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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왜 서머타임(일광절약시간제)이 없을까? 사실 우리나라도 1948년과 1987년, 두 번이나 시행했다가 두 번 다 버렸다. 88올림픽 방송 중계 때문에 부활했던 서머타임의 흑역사와, 지금 EU와 미국이 서머타임을 두고 헤매는 이야기까지 정리해 보았다.

나는 서머타임을 겪어본 적이 없다. 정확히는, 겪어봤을 리가 없는 세대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서머타임이 시행된 게 1988년이라고 하니.. 그 시절, 시계를 한 시간 돌리는 일 따위가 내 기억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방금 문장을 쓰면서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88올림픽이라면 나도 떠오르는 게 있긴 하다. 굴렁쇠 소년,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 호돌이.. 그런데 이게 진짜 내 기억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올림픽을 직접 본 기억이 아니라, 그 뒤로 수십 년간 TV에서 하도 틀어줘서 매체를 통해 재주입된 기억 같다. 기억이라는 게 원래 떠올릴 때마다 다시 그려지는 그림이라던데, 내 88올림픽은 아예 남이 그려준 그림인 셈이다.
각설하고.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이거다. 미국이랑 유럽은 아직도 일 년에 두 번씩 시계를 돌리는데, 왜 우리나라는 안 할까? 답부터 말하면, 안 해본 게 아니라 해봤는데 안 맞아서 버린 거다. 그것도 두 번이나.
서머타임이 뭐길래
서머타임, 정식 명칭으로는 '일광 절약 시간제'(Daylight Saving Time)다. 원리는 단순하다. 해가 긴 여름 동안 시계를 한 시간 앞당겨 놓는 것. 새벽 5시에 해가 뜨고 저녁 7시에 지는 여름날, 시계를 한 시간 당기면 해가 6시에 떠서 8시에 지는 셈이 된다. 어차피 자느라 못 쓰는 새벽의 햇빛을 저녁으로 옮겨서, 퇴근 후에도 밝은 시간을 즐기고 조명 전기도 아끼자는 발상이다.

발상 자체는 벤저민 프랭클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정작 프랭클린이 쓴 글은 '파리 사람들은 늦잠을 자니 양초가 아깝다'는 식의 풍자 에세이였고 진지한 제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진지하게 제도로 굴러가기 시작한 건 1차 대전 무렵, 연료를 아껴야 했던 유럽에서부터라고 하고.

여기까지만 들으면 꽤 합리적인 제도 같다. 실제로 지금도 미국, 캐나다, 유럽 대부분이 이걸 하고 있다. 그러니까 미국주식 하는 분들이 일 년에 두 번씩 개장 시간이 바뀌어서 헷갈리는 게 다 이것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미국주식을 하면서도 서머타임을 체감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어차피 개장 시간이 밤 10시 반이든 11시 반이든 나한테는 똑같이 '자야 하는 시간'이라서 그렇다. 나는 사놓고 잊고 사는 쪽이라.. 게다가 요새는 그냥 주식 모으기로 자동 매수 걸어놓고 신경을 끄고 살고 있다. 어차피 손해는 안 보고 있으니까 뭐.
사실 우리도 두 번 해봤다
어쨌든, 그런데, 우리나라도 이걸 했었다고 한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 번째는 1948년부터다. 정부 수립 무렵부터 1951년까지, 그리고 다시 1955년부터 1960년까지 시행했다고 한다. 시작일이 해마다 들쭉날쭉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 시절에도 꽤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이때의 서머타임은 1960년을 끝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의 1987~1988년이다.
88올림픽, 그리고 골든타임
1987년에 서머타임이 갑자기 부활했다. 명분은 '국민 여가 활용과 에너지 절약'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다들 알고 있었다. 서울올림픽이다.
올림픽 중계권료를 가장 많이 내는 건 미국 방송사인데, 서울과 미국 동부는 시차가 한나절이라 서울의 낮 경기가 미국에선 한밤중에 나간다. 서머타임으로 한 시간을 당기면 주요 경기를 미국의 골든타임에 조금이라도 더 걸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시계를 한 시간씩 돌린 이유가, 미국 안방의 TV 시청 시간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다. 시차 적응은 타국 선수들이 하는 게 아니라 개최국 국민이 해야 하는 것이었단 말이렷다?..

당연히 반발이 나왔다. 특히 당시 기록들을 보면 '한 시간 일찍 출근했으면 한 시간 일찍 퇴근해야 하는데, 퇴근 시간은 그대로였다'는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해가 아직 중천인데 퇴근하기 눈치 보여서 결과적으로 근무시간만 늘었다는 것. 이 대목에서 나는 좀 웃었는데, 웃음의 종류가 그.. 뭐랄까, 그냥 해맑게 웃기고 즐거워서 웃는 웃음은 아니다. 그 때로부터 거의 40년 가깝게 지난 지금, 퇴근 눈치 보는게 어쩐지 낯설지가 않아서 그렇다. 남의 돈 벌어먹고 살기가 참.. 이렇게 힘들다. ㅎㅎ;
어쨌든 결국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여론은 싸늘해졌고, 서머타임은 시행 2년 만인 1989년에 다시 폐지됐다. 그 뒤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몇 번씩 재도입 이야기가 나왔지만, 한 번도 부활하지 못했다. 당시 국민들 머릿속에 '서머타임 = 올림픽 중계용 + 공짜 야근'으로 각인된 게 컸지 싶다.
그럼 원조 동네는 잘 쓰고 있을까
재미있는 건, 정작 서머타임을 계속 해온 동네들도 요즘 이걸 버리고 싶어서 난리라는 거다.
EU는 2019년에 유럽 의회가 '계절마다 시계 돌리기를 폐지하자'고 의결까지 했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도 유럽은 일 년에 두 번씩 시계를 돌리고 있다. 폐지하고 나서 여름 시간에 고정할지 겨울 시간에 고정할지를 두고 나라들끼리 합의가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유럽은 겨울 시간을 원하고(여름 시간으로 고정하면 겨울 해가 오전 10시에 뜬다), 남유럽은 여름 시간을 원하고(저녁 장사와 관광에 유리하니까). 결국 집행위원회가 다시 영향평가 연구를 돌리는 중이고, 그 결과가 올해 말에나 나온다고 한다.

미국도 비슷하다. 서머타임을 아예 연중 고정하자는 '선샤인 보호법'이라는 법안이 있는데, 2022년에 상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하원에서 멈췄고, 그 뒤로 회기마다 다시 발의만 되고 있다. 올해 5월에도 하원 위원회를 하나 통과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최종 통과까지 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의 절반 가까이가 '시계 돌리기 그만하자'는 입장이고, 지금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 정도라고 한다. 다들 싫어하는데 아무도 못 없애는 제도라니, 이쯤 되면 제도가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몸에 나쁘다는 얘기는 진짜일까
서머타임 폐지론의 단골 근거가 건강 문제다. 봄에 시계를 한 시간 당기면 하루아침에 한 시간을 도둑맞는 셈이라, 그 직후에 심근경색이 확 는다는 연구가 유명하다. 미국 미시간의 병원 입원 기록을 봤더니 서머타임 시작 직후 월요일에 심근경색이 24% 늘었다는 결과였다고 한다. 뇌졸중이 8% 늘었다는 연구도 있었고.

그런데 이 대목에도 반전이 있다. 최근에 17만 명 가까운 환자 데이터를 10년 치 훑은 대규모 분석에서는, 서머타임 전환 전후로 심근경장 발생에 의미 있는 차이가 없더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서머타임이 심장마비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는, 초기 연구가 보여준 것보다는 훨씬 약한 효과이거나, 어쩌면 통계의 노이즈였을 수도 있다는 것. 한 시간 잠 손해가 유쾌할 리는 없겠지만, 그게 심장을 멈출 정도냐는 별개 문제인가 보다. 에너지 절약 효과도 마찬가지로 회의적인 쪽인데, 미국 인디애나에서는 서머타임을 도입했더니 오히려 전기 사용이 늘었다는 연구도 있다고 한다. 저녁 조명은 아꼈는데 냉방을 더 돌려서 그랬다나.
정리하면 이렇다. 원래 명분이었던 에너지 절약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수준이고, 건강 피해는 생각보다 약할 수 있지만 어쨌든 좋을 건 없고, 확실한 건 일 년에 두 번씩 온 나라가 겪는 혼란뿐이다.
그래서, 다시 하자고 하면
한국에서도 서머타임 재도입 이야기는 잊을 만하면 나온다. 그때마다 나오는 명분도 비슷하다. 저녁이 있는 삶, 내수 진작, 에너지 절약.
취지는 알겠다. 퇴근 후에 해가 떠 있는 삶이라는 건 분명 매력적이다. 그런데 나는 반대다.
사실 이건 나도 작게나마 직접 실험(?)해 본 적이 있다. 우리 회사는 코로나 때부터 유연근무제를 해서, 9시 출근 6시 퇴근을 기준으로 매달 30분 단위로 최대 한 시간씩, 출퇴근 시간을 바꿔 신청할 수 있다. 다음 달엔 8시 반 출근, 그다음 달엔 10시 출근, 이런 식으로. 그래서 나도 한번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8시 출근 5시 퇴근을 신청했었더랬다. 온 나라의 시계를 돌리는 대신 내 시계만 한 시간 당긴 셈이니, 말하자면 1인용 서머타임이었던 거다.
결과는? 쌍팔년도의 그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후 5시에, 심하면 7시에 잡히곤 하는 업무 회의는 내가 8시에 출근했든 말든 그대로 5시, 7시에 잡혔다. 결국 퇴근은 늦어지는데 아침엔 한 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니, 줄어든 건 저녁이 아니라 내 생활과 아침잠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내니 체력이 조금씩 깎여나가는 게 느껴져서, 결국 슬그머니 다시 9시 출근으로 되돌렸다. 내 저녁을 늘려주는 복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아침을 훔쳐가는 함정이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이른 출근'이 '한 시간 공짜 노동'으로 바뀌더라는 88년의 이야기를, 나는 굳이 온 나라를 동원하지 않고 나 혼자서도 재현해낸 셈이다. 시계를 당긴다고 세상이 같이 당겨주지는 않는다. 회의 시간도, 남들 퇴근 시간도 그대로면, 앞으로 당겨지는 건 내 기상 시간 하나뿐이더라. (뭐, 물론 이게 또, 온 나라가 다 서머타임 도입해서 모두의 한시간을 당겨 놓았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자, 반대하는 이유는 이제 다 나왔다. 에너지 절약 효과는 근거가 흔들리고, 건강에는 어쨌든 딱히 좋을 게 없고, 1988년의 학습이 보여주듯 '한 시간 이른 출근'은 잘못하면 '한 시간 공짜 노동'으로 바뀐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예전에 '표준시' 관련 글을 쓰면서도 한 이야기인데, 나라의 시계를 건드린다는 건 달력과 시계만 바꾸는 일이 아니다. 그 시간에 맞춰 돌아가는 시스템 전부를 건드리는 일이다. 자동으로 동기화 하는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폐쇄망에서 돌아가는 시스템도 분명 있단 말이지. 이걸 누군가는 일일이 한시간씩 맞춰놔야 한다. 당연히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가 생길 수 있고, 그게 어디에서 어떤 오류와 피해를 불러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딱히 Y2K 시절 같은 확장된 공포를 퍼뜨릴 생각은 없지만, 개발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건 정말 귀찮은 일이란 말이다..
무엇보다, 일 년에 두 번씩 시계를 돌리는 그 동네들이 지금 그걸 못 버려서 저 고생을 하고 있는데, 굳이 우리가 그 대열에 다시 합류할 이유가 있나 싶다. 없는 게 부러운 제도가 있고, 없는 게 다행인 제도가 있다. 서머타임은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까 싶다.

글 닫기 전에..
올해 미국 서머타임은 언제 끝날까?
2026년 11월 1일(현지 기준 11월 첫째 일요일)에 끝난다. 그날부터 미국 동부와 한국의 시차는 13시간에서 14시간으로 벌어지고, 미국주식 정규장은 한국시간 밤 10시 반이 아니라 11시 반에 열린다. 밤잠 없는 분들에게만 중요한 정보다.
한국은 서머타임 재도입 논의가 아예 없나?
심심하면 나온다. 다만 매번 명분(에너지, 여가) 대비 비용(혼란, 노동시간, 시스템)이 크다는 반론에 막혀 흐지부지됐다. 1988년의 기억이 워낙 강렬했던 탓도 있지 싶다.
서머타임 하는 나라가 더 많나?
아니다. 전 세계로 보면 안 하는 나라가 훨씬 많다. 주로 유럽과 북미가 하고 있고, 아시아는 거의 안 한다. 일본도 우리처럼 과거에 잠깐 하다가 버렸다고 한다.
시계 한 시간 돌리는 게 그렇게 큰일인가?
생각보다 큰일이다. 스마트폰이야 알아서 바뀌지만, 세상의 모든 시계가 스마트폰은 아니라서. 그 이야기는 표준시 글에서도 한 번 풀었으니 궁금하면 이어서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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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표준시는 왜 일본과 똑같은 UTC+9일까? 우리 땅 한가운데를 지나는 건 동경 127.5도인데, 정작 시계는 동경 135도에 맞춰져 있다. 네 번이나 바뀐 우리 시간과 '일제 잔재' 논쟁까지 가볍게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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