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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노사 뉴스에 무딘 사람이다. 성향으로 따지면 노조 보다는 역시 사측에 가까운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실제로 어디서 파업한다고 하면 "아 또, 이번엔 저기서 난리 치는구나" 정도였고, 나 자신은 노조 없는 중소기업에서 월급 받아 사는 사람 입장에, 뉴스에 나오는 노사 이야기란 대부분 그저 남의 동네 이야기일 뿐이었달까. 그런데 노란봉투법은 좀 다르다. 노봉법에 대한 기사들을 찬찬히 읽었을 때 든 감정은 솔직히 무서움에 가까웠다. 과장일까, 엄살일까, 아니면 진짜 걱정인 걸까, 이 고민은 아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 법에 대해서는 들여다볼수록 내리게 되는 결론은 같았다. 나는 이 법에 반대한다. 적당히 갸웃하는 우려 수준이 아니라, 꽤 분명하게, 나는 이 법을 반대한다.

'노란 봉투'에서 시작된 이 법은, 8년을 돌고 돌아 결국 시행이 되고 말았다.

다만 이 입장에 대해서 미리 변명부터 해 놓겠는데, 나는 이 법의 좋은 점이 있다면 이것을 일부러 외면할 생각은 없다. 좋은 게 있다면 좋다고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시행 이후 80일을 들여다본 솔직한 소감은, 좋은 점을 찾으려 애써봐도 도무지 그놈의 좋은 점이라는게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입장은 "근거 있는 강한 반대"로 정리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 감정으로 미는 반대가 아니라, 왜 반대하는지 근거가 있어서 이것을 하나씩 따져보는 반대다.

 

이름 만큼은 좋은 의도였다

먼저 공정하게 출발하자. 이 법이 왜 생겼는지부터 살펴보면 그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노란봉투법' 이라는 이 이름부터가 그렇다.

 

법 제정 배경을 이야기 하자면 우선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는 파업으로 수천억 원의 손해가 났다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4년 법원은 노동자들에게 47억 원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한 사람이 평생 갚아도 끝나지 않을 액수였다. 그때 한 시민이 노란 봉투에 작은 성금을 담아 보냈고, 그게 캠페인으로 번지면서 이 법에 "노란봉투법"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니까 출발점은 단순하고 또 인간적이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으로 노동자를 평생 짓누르지는 말자는 것.

 

여기에 더해, 우리 노동시장의 오래된 이중구조 문제도 진짜 문제다. 계약서상으로는 하청과 맺었지만 실제 일하는 조건은 원청이 다 정하는 구조에서, 정작 결정권을 쥔 원청과는 말 한마디 못 섞는 노동자가 많았다. 이 답답함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의도까지 비웃을 마음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던가. 문제는 늘 그렇듯 의도가 아니라 그 의도를 담은 문장이다.

 

10년을 돌고 돌아 이 법이 시행되기까지.

 

세 번의 통과와 두 번의 거부권, 10년의 우회로. 법 시행까지의 여정은 짧지 않았다.

법이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10년이 넘게 걸렸으며 한 번에 통과된 게 아니다. 국회 문턱은 무려 세 번이나 넘었고, 그중 두 번은 대통령 거부권에 막혀 폐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 2015년 :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 노란봉투법을 처음 발의
  • 2023년 11월 : 21대 국회 본회의 통과
  • 2023년 12월 :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 재표결 부결로 폐기
  • 2024년 8월 : 22대 국회 본회의 통과 ->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재차 행사
  • 2024년 9월 : 재표결 부결로 다시 폐기
  • 2025년 8월 : 세 번째로 본회의 통과
  • 2025년 9월 : 공포
  • 2026년 3월 10일 : 시행

연표를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한 가지가 눈에 밟힌다. 같은 법이 두 번이나 거부권으로 막혔다가 세 번째에야 통과됐는데, 그 사이에 결정적으로 바뀐 건 법의 내용이라기보다 법을 둘러싼 정치 지형이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고 새 정부가 들어선 뒤, 거부권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사라지자 법은 비로소 시행에 이르렀다.

 

21대 국회 초반부는 문재인 정권이었다. 이 노란봉투법은 민주당과 노동계가 오래 추진해 온 법이지만 처음 발의되고 나서부터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특히 문재인 정부 시기 민주당이 국회 다수를 차지했던 때에도 입법까지 이르지는 못했다는 점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 민주당 측에서도 이 법은 그냥 통과시키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이 법의 통과 과정은 단순한 당론 추진이라기보다 정권 교체, 거부권 정국, 여소야대 구도, 노동계 요구가 누적된 결과로 봐야 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 대에는 질질 끌며 미루다가, 윤석열 정부에 이르러 본회의 통과, 대통령에 의해 두 번이나 "이건 곤란하다"며 제동이 걸렸던 법이, 그때 지적된 문제들이 풀려서가 아니라 막아설 사람이 사라져서 여전히 독소 조항을 품은 채 통과된 것이라면, 그 우려들은 시행 이후 실제로 다 어떻게 되고 있나.

 

노란봉투법은 시행 이후 현재 시점, 약 80일쯤 지났다. 이쯤 되면 "그래서 실제로 뭐가 달라졌나"를 한 번 짚어볼 만하다. 나는 물론 노사 문제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걱정한 건 크게 세 가지였는데, 지난 80일을 보니 과연 그 걱정이 줄기는커녕 더 또렷해지더라.

 

독소조항 하나, 누가 사용자인가

우선 이 법의 독소 조항 첫 번째는 '사용자'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노동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이 있으면 원청도 사용자로 보고 교섭에 응해야 한다.

 

취지는 알겠다. 그런데 잠깐,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이 말, 누가 봐도 선이 또렷한가? 어디까지가 실질적 지배이고 어디부터가 그냥 평범한 거래 관계인지, 법 문장만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유럽계 기업들을 대표하는 유럽상공회의소(ECCK)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효율적인 공급망 관리를 위해 협력사와 긴밀히 협업하는 일반적인 사업 관계까지도 "실질적 지배"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모호함이 결국 경영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고 법적 리스크를 키울 것이라고 했다. 더 뼈아픈 말은 따로 있었다. 법원의 판례가 쌓여 해석이 명확해지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고, 그동안 한국은 "예측 가능성이 낮은 투자처"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왜 무섭냐면, 법이 모호하면 그 모호함을 메우는 건 결국 각 사건마다 해당 사건에서의 노동위원회와 법원이 되기 때문이다. 판례가 쌓이는 몇 년 동안 현장은 안갯속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사용자인지 아닌지"조차 미리 알 수 없다. 게다가 교섭 창구를 어떻게 단일화할지가 명확하지 않아서, 원청 하나가 수십 개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일일이 대응해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여기에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가 같은 재원을 두고 부딪히는 이른바 노노 갈등 가능성도 있다. 약자를 돕겠다는 법이 약자들끼리 싸우게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막연한 우려가 아니라 사실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 집계를 보면 시행 첫 이틀 동안 하청 노조 450여 곳, 조합원 약 10만 명이 원청 사업장 약 250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시행 이틀 만에 쏟아진 숫자다. 택배 쪽이 특히 빨랐다. 시행 첫날 쿠팡과 포스코가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아들여 공고를 냈고,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을 비롯한 택배 주요 업체들을 상대로 원청 교섭을 요구해 대부분이 절차에 들어갔다.

 

여기서 이제 이 "모호함"이 어떤 얼굴을 하는지가 드러났다. 같은 운송 업종인데도 택배 기사들은 원청 교섭의 길이 열린 반면, 화물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들을 개인사업자가 모인 법 밖의 노조로 보아 노조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데, 그 경계를 가르는 건 또렷한 법조문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해석이다. 내가 첫 번째 조항을 가장 무섭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모호함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결국 누군가의 손에 판단의 권력을 몰아준다.

 

노노 갈등도 이미 현실이 됐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삼성전자에서 나왔다. 올해 임금 협상에서 반도체를 맡는 DS 부문과 가전, 모바일을 맡는 DX 부문 사이 성과급 격차가 100배까지 벌어지자, 같은 회사 안에서 노조와 노조가 부딪혔다. DX 부문 쪽의 한 노조는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를 멈춰 달라며 법원에 가처분까지 냈다. 한 경제지는 노란봉투법으로 교섭권을 갖게 된 하청 노조가 원청과 따로 교섭을 요구하면서, 같은 파이를 두고 싸우는 노노 갈등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짚었다. 약자를 돕겠다는 법이, 약자들 사이의 선을 더 날카롭게 긋고 있는 셈이다.

 

독소조항 둘, 경영 판단이 파업거리가 되었다?

누가 진짜 사용자인가. 그 선이 안갯속이다.

 

두 번째가 잠재적으로 가장 악질적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쟁의의 범위가 경영상 판단까지 넓어졌다.

 

예전에는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두고 다투는 게 쟁의였다. 그런데 이제는 구조조정, 정리해고, 사업장 이전, 사업부 매각, 인수합병, 심지어 어떤 기술을 도입할지 같은 결정까지 쟁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회사가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팔고, 어디에 투자할지를 정하는 일. 그 가장 기본적인 결정을 두고도 파업이 가능해진다면, 그 회사의 오너, 경영진, 임원진은 대체 무엇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걸까.

 

이것 역시 그냥 우려가 아니다. 시행 80일 동안 이미 눈앞에서 벌어졌다. 가장 큰 무대는 삼성전자였다. 올해 임금 협상에서 노조는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를 넘어, 영업이익의 15퍼센트, 액수로는 약 45조 원에 이르는 규모를 성과급으로 달라거나 초과이익성과급의 상한을 없애라는 요구까지 내걸었다. 회사가 한 해 번 돈을 어떻게 나눌지는 전형적인 경영 판단의 영역인데, 그것이 파업을 건 교섭의 한복판에 올라온 것이다. 결국 파업을 코앞에 두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서서야 잠정 합의가 나왔고, 한 신문은 그 파업 열차를 멈춰 세운 게 회사의 호소가 아니라 대통령의 경고였다고 적었다. 사측은 경영상 부담과 공급망 차질, 주주와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들어 신중해야 한다고 했지만, 협상 테이블의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었는지는 이 장면 하나로 충분히 짐작이 된다.

 

성과급만이 아니다. 현대모비스에서는 한 사업부의 매각 계획에 노조가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사업을 팔고 사는 결정까지 쟁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예전 같으면 경영의 영역이라 여겨졌을 사안들이, 이제는 줄줄이 쟁의 테이블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만들고 팔지조차 협상 테이블 위로. 사공이 너무 많아 배가 하늘로 올라가버릴 기세다.

 

현대자동차 노조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올해 초, 현대차그룹이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에서 사람 모양의 양산형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하고 2028년까지 수만 대를 만들어 생산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히자, 노조는 곧바로 소식지에서 경고했다. 노사 합의 없이는 단 1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건비를 줄이려는 신기술 도입을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말도 많았더랬다. 자, 시행 전에도 이런 목소리가 나왔는데.. 경영상 판단까지 쟁의 대상으로 넓힌 지금은? 이런 주장이 한층 단단한 법적 근거까지 얻게 되는게 아닌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어떤 기술을 도입할지는 회사의 미래가 걸린 가장 핵심적인 경영 판단의 영역이 아닐까. 그런데 그 결정조차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하고, 합의가 안 되면 파업으로 막을 수 있으며, 심지어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도 오히려 노조가 유리하다면.. 한국 공장은 점점 새로운 기술을 들이기 어려운 곳이 된다. 로봇 도입을 막으면 일자리가 지켜질까? 내 생각은 정반대다. 로봇은 결국 들어오되, 한국이 아닌 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실제로 결국 그 로봇이 먼저 향하는 곳 역시 국내 공장이 아니라 미국에 새로 지은 공장이라고 했다.

 

기업 경영에서 속도는 그 자체로 경쟁력이다. 시장이 바뀌면 빠르게 사업을 접고 빠르게 다른 데 투자해야 살아남는다. 그 의사결정 하나하나가 노조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사안이 된다면, 의사결정은 느려지고 리스크는 커진다. 느려진 결정과 커진 리스크의 청구서는 결국 누가 받을까. 나는 그게 결국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회사가 만들 수도 있었던 일자리라고 본다.

 

독소조항 셋, 손해배상의 빗장이 풀리다

'책임의 빗장'이 헐거워졌다?

 

세 번째는 손해배상 책임이 개별화되고 연대 책임이 제한되었다는 것이다. 불법 파업으로 손해가 나도 "누가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를 사측이 일일이 가려내야 하고, 함께 묶어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졌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고 가자. 그럼 손해배상을 아예 못 하게 만든 거냐? 아 물론 그건 아니다. 법이 배상 자체를 면제한 건 아니고 누가 얼마나 부쉈는지 따져서 그만큼만 묻자는, 말로만 들으면 합리적인 취지다. 47억을 한 사람에게 떠넘기던 시절로 돌아가지 말자는 거니까.

 

문제는 실무다. 수천, 수만 명이 참여한 파업에서 "이 사람이 정확히 이만큼의 손해를 냈다"를 개인별로 입증하는 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어느 보도에서는 대규모 파업의 책임을 개별 입증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합리적 조정이라는 좋은 말 뒤에서, 불법 파업에 대한 제동장치가 사실상 헐거워진 셈이다. 적법한 파업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불법이어도 책임을 묻기 어렵다면, "일단 세게 밀어붙이고 보자"는 쪽으로 기울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사실 이 셋은 따로가 아니다

모호함에서 시작된 도미노의 끝

 

여기까지 읽으면 내가 셋으로 정리해 놓은 독소조항이 각각 별개의 문제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이 셋은 따로 노는 조항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사슬이다.

 

모호한 문장과 독소조항은 예측 불가능성을 키운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은 노사 사이의 힘의 균형을 압도적으로 한쪽, 노조 쪽으로 기울인다. 경영의 거의 모든 결정이 교섭과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불법 파업의 책임은 묻기 어려운데, 누가 사용자인지조차 사후에 법원이 정해준다면, 협상 테이블의 무게추는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기울어진 균형은 결국 "한국에서 사업을 계속하는 게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질문의 끝, 그 결말에는 투자 위축과 일자리 감소, 더 멀리는 경제 전반의 활력 저하가 이어진다.

 

이건 나 혼자만의 비약이 아니다.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을 대표하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와 유럽상공회의소는 이 법이 한국의 경영 환경과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릴 것이라며 일찌감치 반대 의사를 밝혔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시행을 앞두고 7개 주한 외국상공회의소 대표들을 직접 만나 보완책을 약속해야 했을 정도다. 정부가 외국 투자자들을 달래러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이 법이 투자 심리에 어떤 신호를 주는지 보여준다. 경영계에서는 이 법이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강한 규제라고 말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시행 전부터 산업 현장이 극도의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노동계는 정당한 교섭 통로가 열리면 오히려 극단적 충돌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기대다. 다만 나는 그 기대가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사실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법의 설계 위에서는, 그 기대는 실현되기 어려울거다. 기대는 의도의 영역이고, 현실은 결국 완성된 법 조항, 한 문장 한 문장의 영역이니까.

 

그래도 좋은 점은 정말 없을까

여기서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강하게 반대한다고 해서, 좋은 장면 하나 없는 법으로 몰아가는 건 비겁하니까.

 

실제로 좋은 장면이 있긴 했다. 경북의 한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분들이 19년 만에 처음으로 원청인 대학과 직접 마주 앉았다고 한다. 시행 이틀 만에 대학이 교섭을 받아들였다고. 싸움이 아니라 대화로 풀게 됐다는 인터뷰를 보면, 이건 분명 이 법이 만든 좋은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보도를 끝까지 읽으면 마음이 다시 가라앉는다. 원청이 교섭을 받아준 곳은 10% 남짓이고, 서울의 여러 대학 하청노조 여덟 곳은 두 달이 넘도록 답조차 받지 못해 결국 노동위원회에 시정 신청을 냈다고 한다. 법은 "교섭할 수 있다"고 문은 열어줬지만, "이렇게 반드시 교섭하라"는 길까지 또렷이 깔아주지는 못한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이 이 법의 본질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 좋았던 한동대?의 교섭 장면은, 사실 이렇게 거대하고 모호한 법이 아니어도 만들 수 있다. 청소노동자 같은 명백한 간접고용 약자를 위해 더 좁고 더 분명한 법을 설계했다면, 좋은 장면은 살리고 부작용은 줄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법은 좋은 장면은 수많은 약자들 중 10%에게만 주면서, 불확실성이라는 청구서는 산업 전체에 돌렸다. 그 거래가 과연 남는 장사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좋은 점이 아예 없다기보다는, 그 좋은 점이 이 거대한 부작용을 정당화하기엔 너무 작고, 게다가 더 나은 방법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는 쪽이 정확하겠다. 즉 비용 대비 이익이 터무니없이 적거나 없는, 엉터리 정책이라고 평가하겠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뭐, 80일은 짧다. 법은 시행령이 다듬어지고 판례가 쌓이면서 자리를 잡는 거라, 지금의 혼란만 보고 "거봐 망했지"라고 단정하는 건 성급하다고 지적한다면, 그 점은 나도 인정한다. 충분히 시간이 지나면 노동계의 기대처럼 '좋은 균형점'을 찾을 가능성도 0은 물론 아니겠지.

 

다만 그렇게 나를 지적하는 사람이라도 이 말에는 동의할 거라 믿는다. 좋은 의도가 곧 좋은 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의도는 사람을 향하지만, 법은 문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모호한 문장은 대개 더 잘 싸우고 더 잘 조직된 쪽에게 유리하게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김앤장이라든지, 전관예우 같은 말 자체가 성립할 개연성을 잃는다. 누가 변호하든 법의 입법 취지에 따라 판결이 정해져 있다는 소리가 되니까. 하지만 현실은 같은 법 조항 아래 유사한 사건으로 싸우더라도 누가 승소하는지는 판결이 나와봐야 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체로 더 잘 싸우고 더 잘 조직된 쪽이 유리했다.

 

약자를 위해 만든? 이 모호함이 정말 약자를 지킬지, 아니면 가장 잘 싸우는 조직만 지킬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기업이 한국에 남을지 떠날지, 그 결정의 비용을 결국 평범한 일자리를 가진 국민들이 어떻게 치르게 될지. 이게 앞으로 우리가 지켜봐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의도만으로 좋은 법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 아니면 의도와 설계는 끝까지 별개의 문제라고 보는지. 아직도 노란봉투법과 그 법을 제정한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깊이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나는 노란봉투법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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