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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들이밀수록 반발심에 의해 원래 의견만 더 굳어진다고?

 

이번 6·3 지방선거, '투표용지가 모자라서' 참정권을 포기해야만 했던 유권자들이 있다.

 

서울 송파에서만 5개 동 12곳, 강남, 광진, 동작까지 14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오후 1시쯤부터 줄이 멈췄고, 마감 시각이 지나도 대기표를 든 사람들이 남았고, 끝내 투표를 못 하고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그날 밤 선관위 사무총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선관위에서 30년 일하다 퇴직한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정도. 선관위의 관리가 부실했던 의견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을 가질 수 없을거다. 그리고 곧바로 '부정선거'를 외치는 시위대가 과천 중앙선관위 앞으로, 송파의 한 투표소 앞으로 몰렸다. 개표함이 묶이고, 개표가 늦어졌다.

 

여기서 잠깐 멈춰서 생각해보자.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건 그냥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누군가 특정 지역을 노리고 고의로 그랬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주장이다. 어떤 사건에서 '실수'와 '고의'를 가르는 건,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결과만 보면 똑같아 보여도, 그 안에 의도가 있었는지를 입증하려면 그만한 증거가 필요하다. 이 사태를 두고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의 수법과 닮았다는 이야기도 도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해석이지 입증된 사실이 아니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림이 겹쳐 보이긴 하지만, '겹쳐 보인다'와 '그렇다'는 다른 말이니 여기선 접어두겠다. 이 분야의 어떤 권위자는 이런 워딩을 즐겨 쓰던데.. "냄새가 납니다.."

 

뭐, 아무튼, 그래서 내가 정말 궁금했던 건 이 질문이다. 만약 조사가 끝나서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우리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부정선거가 아니라 단순 실수로 '밝혀'진다면, 의심하던 사람들은 '아, 그렇구나' 할까? 반대로 정말 문제가 있었다고 '밝혀'진다면, 별일 아니라던 사람들은 인정할까?

 

이 질문을 붙들고 있다가 한 단어를 만났다. '백파이어 이펙트(backfire effect)', 우리말로 '역화 효과'다. 오늘 글은 내가 이걸 처음 듣고 하나씩 찾아본 걸 정리하는, 일종의 복습 메모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면, 이 효과는 한 번 크게 뒤집혔다가, 다시 한 겹 더 들어가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좀 별난 개념인 것 같다. 정리하기 어려운데.. 일단 들어가본다.

 

줄은 길고, 용지는 모자랐다. 사실은 여기까지. 그다음부터가 어려운 문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된 이미지 입니다)

 

백파이어 이펙트, 그러니까 '역화 효과'

먼저 이름부터 살펴보자. 백파이어(backfire)는 원래 자동차 용어다. 엔진에서 연료가 제대로 된 타이밍에 안 터지고 엉뚱한 곳에서 역으로 점화돼버리는 현상. 엔진의 이상 연소 현상이라는 점에서 '노킹(Knocking)'과 비교할 만 하지만, 발생 위치와 원인이 다르다는 차이가 있다. 연소실 내부에서 터지는 노킹과 다르게, 백파이어는 배기구 같은 곳에서 '펑' 하는 폭발음이 나고 흰 연기가 나기도 한다. 어쨌든, 백파이어라는 이 이름 자체와 그 의미는 한마디로 '의도와 반대로, 역방향으로 터진다'는 뜻이다.

 

심리학에서 쓰는 백파이어 이펙트도 정확히 그 그림이다. 틀린 믿음을 고쳐주려고 사실을 들이밀었는데, 그게 의도와 정반대로 터져서 오히려 그 믿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 고쳐주려던 행동이 거꾸로 터져 역화(백파이어)를 일으킨 셈이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이야기다. 이게 사실이라면 가짜뉴스도, 잘못된 건강 상식도, 정치적 오해도.. 팩트체크를 하면 할수록 더 나빠진다는 거니까. '그럼 대체 어쩌라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 개념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의외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백파이어는 원래 엔진이 엉뚱한 데서 거꾸로 터지는 현상이란다. Correction(정정)이 역으로 심리에 불을 지펴 터지는 현상과 통한다고 봐야 하나?..

 

시작은 2010년, 이라크 이야기였다

이 용어를 처음 만든 건 미국 정치학자 브렌던 나이언(Brendan Nyhan)과 제이슨 라이플러(Jason Reifler)다. 2010년 'When Corrections Fail(정정이 실패할 때)'이라는 논문에서 이 효과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실험은 이랬다. 대학 연령대의 참가자들에게 진짜 뉴스 기사처럼 보이게 만든 가짜 기사를 보여주는데, 어떤 기사에는 정치 지도자의 말을 반박하는 '정정 사실'을 끼워 넣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건이다. 한 집단에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다른 집단에는 같은 발언에 더해 '실제로는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공식 정정 사실을 함께 보여줬다.

 

그런데 결과가 이상했다. 정정 사실을 본 보수 성향 참가자들은 평균적으로 오히려 'WMD가 발견됐다'고 더 믿게 된 것이다. 반대로 부시의 줄기세포 정책에 대한 정정 사실을 본 진보 성향 참가자들은 이 정정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하나 있다. 흔히 '백파이어 이펙트' 하면 '사실은 안 통한다'로만 기억하는데, 이 원조 연구에서도 효과가 모든 데서 나온 게 아니었다. 감세가 정부 수입에 미치는 영향이나 줄기세포 연구 같은 다른 주제에서는 효과가 안 나타나거나 아주 약했다. 강하게 터진 건 이라크 WMD, 그러니까 당시 미국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당파적이었던 그 한 주제였다. 이 점이 나중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 (스포일러 하나 하자면, 이 글의 결론도 결국 이 '감정적인 주제'라는 단서로 돌아온다.)

 

아무튼 이 연구는 상당히 유명해지고, 논문은 수백 번 인용되었으며, 기자들이 오보를 어떻게 정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에까지 영향을 줬다. '사실로는 사람 마음 못 바꾼다'는 약간 냉소적인 명제가 이때부터 상식처럼 퍼졌다.

 

정정 기사를 봤는데 믿음이 오히려 올라간다. 2010년, 모든 게 여기서 시작됐다. (개념 재구성 이미지)

 

그런데, 재현이 안 됐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재밌는 부분이다.

 

과학에서 어떤 발견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재현(replication)'이다. 같은 실험을 다시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보는 것. 실험을 왜 하는가? 가설을 입증할 데이터를 얻어내는 과정이 실험이다. 한 번 나온 결과는 우연일 수 있으니, 관찰된 사실을 근거로 가설을 세우고, 세운 가설에 따라 변인을 통제하여 여러번의 시행을 통해 같은 결과가 또 나오는 것을 확인해 봐야 비로소 가설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다른 연구자들이 이 백파이어 이펙트를 다시 실험해보기 시작했다. 토머스 우드(Thomas Wood)와 이선 포터(Ethan Porter)가 대표적이다. 이 사람들이 한 실험의 규모가 좀 무시무시하다. 1만 명이 넘는 참가자에게 52개나 되는 쟁점에 대한 정정을 보여줬다. 그것도 백파이어가 나타날 법한, 일부러 가장 첨예한 이념 쟁점들로 골라서.

 

결과는?

 

Concentrate,  P.. (not Potter,) 'Porter'.  Focus!

 

 

모든 실험에서, 백파이어를 유발하는 정정은 단 하나도 없었다. 백파이어의 증거는 이전 연구가 시사한 것보다 훨씬 빈약했다. 초기 버전 실험에서 8,100명에게 36개 주제로 정정을 보여줬을 때, 36개 중 딱 1개(이라크 WMD)에서만 백파이어가 관찰됐다. 그나마도 같은 정정을 더 단순한 문장으로 바꾸자 그 하나마저 사라졌다. 그래서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이거다. 대체로 시민들은, 그 정보가 자신의 당파적이고 이념적인 신념에 반하더라도, 사실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이렇게 되면 이 백파이어 이펙트는 WMD 하나만 빼고 다 안 나왔다는 거다. 그리고 그 하나도 문구를 쉽게 바꾸니 없어졌고. 우드와 포터 본인들 표현을 빌리면, 이라크 전쟁은 미국 정치에서 유난히 특수한 사건이었을 수 있다.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고, 수년간 이어졌고, 극도로 당파적인 행정부가 양극화가 심해지던 시기에 밀어붙인 이슈였다. 즉 백파이어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 아주 특정한 조건에서만 가끔 튀어나오는 예외에 가깝다는 쪽으로 정리된 거다.

 

수십 개의 쟁점, 1만 명이 넘는 참가자. 그런데 역화효과는 거의 안 나왔다. 통념이 뒤집힌 순간.

 

두 연구는 뭐가 달랐을까

여기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지점. 같은 현상을 봤는데 왜 한쪽은 '있다'고 하고 한쪽은 '없다'고 할까? 두 연구가 뭘 다르게 했는지를 따라가 보면, 즉 통제되지 못했던 변수를 추적해 보면, '언제 통하고 언제 안 통하나'라는 진짜 질문에 가까워진다. 우선 정리해 보자.

 

비교 항목 원조 연구(2010) 재현 연구(2016~2019)
표본 규모 대학 연령대 중심, 소규모 1만 명 이상, 다양한 사람들
다룬 쟁점 수 소수의 강한 쟁점 수십 개 쟁점을 폭넓게
정정 문구 비교적 복잡한 표현도 포함 단순한 문구로 바꾸면 효과 사라짐
대표 사례 이라크 WMD (당대 최고 감정적 이슈) 같은 사례도 확장판에서는 0건
결론 사실 정정이 역효과를 낸다 대체로 사람들은 사실을 받아들인다

 

핵심은 세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표본. 한 학교 학생 몇십 명에게서 나온 패턴과, 전국 1만 명에게서 나온 패턴은 무게가 다르다. 둘째, 쟁점. 이라크 WMD처럼 정체성과 분노가 얽힌 단 하나의 이슈를 보면 백파이어가 보이지만, 수십 개를 두루 보면 거의 안 보인다. 셋째, 문구. 같은 사실이라도 도발적으로 들이밀면 역효과가 나고, 담백하게 말하면 그냥 받아들여진다는 것. 이건.. 큰 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결국, '조건에 따라 다르다'가 정답에 가깝지 않나 싶다. 백파이어 이펙트는 '항상 일어나는 법칙'이라기 보다는, '아주 특정한 조건에서 드물게 일어나는 예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조건이란 대충 이런 거다. 그 믿음이 내 정체성, 세계관, 신념이랑 단단히 묶여 있을 때, 정정 사실이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이슈가 이미 진영 싸움이 돼 있을 때. 뭐, 이런 조건.

 

표본, 쟁점 수, 문구. 이 세 가지 요인은 실험의 결과를 갈랐다.

 

백파이어에도 종류가 있다더라

찾다 보니 백파이어 이펙트는 한 덩어리가 아니라 몇 갈래로 나뉘더라. 백파이어 효과는 과잉 반박(overkill), 세계관(worldview), 친숙성(familiarity) 효과로 나뉜다고 한다. 알기 쉽게 풀면 이렇다.

 

하나, 세계관 백파이어. 정정 사실이 내 세계관, 내 정체성을 건드릴 때 일어난다. 위의 이라크 WMD가 이쪽이다. '내가 지지한 전쟁이 틀렸다'는 사실은 나라는 사람 전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차라리 사실을 밀어내는 것.

 

둘, 친숙성 백파이어. 이게 좀 얄궂다. 거짓을 반박하려면 일단 그 거짓을 언급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그 거짓에 더 친숙해지고, 결국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기 쉬워진다는 것. '백신이 자폐를 유발한다는 건 거짓입니다'를 자꾸 들으면, 시간이 지나 '백신... 자폐... 뭔가 있었는데' 하고 거짓 쪽만 기억에 남는 식이다. 한 번 들은 가짜뉴스 제목도 반복되면 진짜처럼 느껴지는 '착각적 진실 효과(illusory truth effect)'랑 사촌지간이다. 어차피 우리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허술한지는 이름 하나 떠올리는 것조차 쩔쩔매는 걸 보면 알 만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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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과잉 반박 백파이어. 반박 논거를 너무 많이, 너무 복잡하게 늘어놓으면 사람은 차라리 단순한 거짓을 택한다는 것. 머리 아프게 만들면 역효과라는 거다.

 

그런데.. 여기도 또 반전이 있다. 이전 연구들에서는 친숙성 백파이어 효과의 증거가 거의 없었다. 친숙성 백파이어를 다시 검증한 대규모 실험에서도 정정에서 거짓을 언급하더라도, 그 거짓에 노출된 적 없는 통제 집단에 비해 오해가 더 강해지지는 않았다. 정정할 때 거짓을 반복해도 대체로 안전하다는 뜻이다. 세계관이든 친숙성이든, '정정 사실을 들이미는 것이 역효과를 내더라'는 무서운 이야기는 다시 검증해보니 대부분 잘 안 나왔다는 거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남는다. 사람들은 명확하고 신뢰할 만한 정정 사실을 받은 뒤에도 종종 그 거짓 정보를 계속 추론에 사용한다. 이걸 '지속 영향 효과(continued influence effect)'라고 부른다. 믿음이 거꾸로 강해지는 '역화'까지는 아니어도, 한 번 박힌 정보의 잔상은 정정 뒤에도 꽤 오래 남는다는 것. 이건 여러 연구에서 꾸준히 확인되는 진짜다.

 

백파이어도 한 종류가 아니더라. 그런데 다시 검증하니 대부분 잘 안 나왔다는 게 함정. 그럼 이 백파이어의 종류라는건 대체 무엇을 정의한 것이란 말인가.

 

백파이어의 전제, 그게 정말 '팩트'일 때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걸 짚어야겠다. 백파이어 이펙트를 이야기하려면 숨은 전제가 하나 있다. '무엇이 팩트인지가 이미 확정돼 있고, 그 팩트를 정정으로 들이미는' 상황이라는 전제. 그런데 현실에선 바로 이 전제부터 안 맞는 경우가 많다.

 

다시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돌아가 보자. '용지가 부족했다'는 건 확정된 사실이다. 선관위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런데 '그게 고의였나, 특정 지역을 노렸나'는 아직 아무도 확정하지 못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아마도 조사가 진행 될테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백파이어'를 논할 수 없다. 누가 사실을 거부하느냐를 따지기 전에, 무엇이 사실인지부터 차분히 가려야 하는 단계니까. 백파이어 이펙트는 그 '사실 가리기'가 끝난 다음에야 적용되는 이야기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어떤 의혹이 '음모론'인지 '아직 안 밝혀진 진실'인지는, 사실관계가 드러나기 전엔 단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의혹 제기 자체를 무조건 음모론으로 깔아뭉개는 것도,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도 둘 다 성급하다. 필요한 건 빠르고 투명한 사실 규명이다. 거기서부터 백파이어를 따질 수 있다.

 

백파이어는 사실이 확정된 다음 이야기다. 그 전엔 사실부터 가리는 게 순서

 

우리나라에서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행연구가 미국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물론 재미있긴 했지만 어떤 이론, 연구든 나 자신과 내 주변 상황에 적용했을 때 진짜 나에게 의미가 생기는 것 아닐까. 어쨌든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무대는 충분하다 못해 아주 거하게 깔려 있는 상황이다. 2024년 성인 2천여 명을 분석한 어떤 연구에서, 가짜뉴스 노출은 정서적 양극화를 유의하게 심화시켰고, 또 다른 연구는 한국의 미디어 환경이 '합리적 유권자'보다 '합리화하는 유권자'의 재생산을 돕고 있다고 짚는다. 사실을 따져보려고 정보를 찾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한 결론을 합리화하려고 정보를 찾는다는 거다.

 

여기서는 양쪽 진영을 같은 잣대로 보려고 한다. 먼저 보수 쪽. '부정선거' 음모론은 이미 사법적으로 검증이 끝난 영역이 있다. 한 국회의원이 선관위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총선과 대선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소송 182건 가운데 진행 중인 것을 빼고 150건이 모두 기각, 각하, 소취하로 종결됐다. 대법원도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사법 검증이 끝난 건에 대해서는, 결과에 승복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정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설명으로 갈아타는 건 세계관 백파이어의 거의 교과서적인 모습이다. 물론 이번 투표용지 부족처럼 아직 안 밝혀진 새 사안은 별개다. 그건 위에서 말했듯 먼저 사실관계부터 규명할 문제고.

 

다음은 진보 쪽. 솔직히 말하면, '검증이 끝났는데도 정정 사실을 부정한' 깔끔한 사례를 찾기가 보수 쪽만큼 쉽지 않았다. 대신 눈에 띈 건 '사실관계 검증 자체가 아직 진행 중이거나 멈춰 있는' 사안이 꽤 많다는 점이었다. 몇 개만 들면,

  • 이재명 대통령의 형사재판 5건(공직선거법, 대장동, 성남FC, 위증교사, 대북송금 관련 등)은 2025년 7월부로 모두 정지됐다. 이건 누가 방해해서가 아니라 헌법 84조(대통령 재직 중 불소추특권)에 따랐다고 하는 법원의 결정이고, 헌재도 관련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합법적 절차다. 다만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이 포함되어 있을 지언정, 결과적으로 유무죄라는 '사실관계'는 임기 동안 가려지지 않은 채 멈춰 있는 상태다.
  •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성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부 검사로는 수산물 수만 건, 천일염 수백 회 검사에서 방사능이 불검출인데, 다른 쪽에서는 일본 측 데이터를 근거로 위험을 계속 제기한다. 양쪽이 서로 다른 데이터를 들고 다투는 중이라, 어느 한쪽을 '검증 끝난 팩트 부정'이라고 잘라 말하기 어렵다.. 물론 이 사안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처음과는 정말 많이 변한 상태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게 있다. '검증이 지연되고 있다'가 곧 '누군가 방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해석에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재판이 헌법 조항으로 어쩔 수 없이 멈춘 것이거나,

(항상 100%의 확률은 없다고 보는게 일반적인 자연과학의 시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99.9% 뒤의 0.1%의 위협도 해명해야 한다고 우기는 세력에 의해서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과학적 논쟁이 원래 길거나,

(하필 유독 특정 진영 사람들이 피의자인 재판만 지연되는 경향이 있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지만서도)그냥 사법 절차가 느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진보 쪽 사례가 안 잡히는 건 누군가 검증을 방해해서다'라고 결론짓는 건, 이 글이 경계하는 바로 그 함정.. '내 짐작에 맞는 설명만 고르기'에 빠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 입이.. 아니,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난 그냥 딱 여기까지만 말하련다. '지연되고 멈춰 있는 사안이 이렇게 많더라, 그리고 그게 빨리 규명됐으면 좋겠다.' 사실관계가 드러나야, 그제야 누가 그걸 받아들이고 못 받아들이는지를 따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여기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라고 다를까? 내가 응원하는 편에 불리한 사실이 나오면, 나도 '에이, 그건 좀..' 하고 한 번 더 의심부터 할거다. 남 일처럼 흉보기 쉬운데, 사실 이건 우리 모두의 기본 설정값에 가깝다.

 

끝난 건 승복하고, 안 끝난 건 빨리 밝히고. 내로남불 하지 좀 맙시다. 상호간에 말야, 진짜.

 

그래서, 신념이 되면 어떻게 되나

이쯤에서 앞에 깔아둔 떡밥을 회수해보자. 백파이어가 강하게 나타났던 그 하나의 사례, 이라크 WMD. 왜 유독 이 이슈에서만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해당 이슈가 당시 미국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정체성과 맞물린 이슈였기 때문일거다.

 

여기서 이런 생각이 하나 들었다. 어쩌면 백파이어 이펙트는, 대부분의 사안에서는 드물지만, 세계관을 넘어 거의 종교나 신념의 수준까지 굳어진 사안에서는 진짜로 맞는 게 아닐까. 원조 연구가 하필 가장 감정적인 이슈에서 효과를 봤다는 게 이걸 간접적으로 받쳐주는 것 같다. 사람은 신념이나 종교에 대한 공격에는 감정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니까.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에게 '이건 사이비다'라는 객관적 증거를 아무리 들이밀어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따지고 보면 우리 뇌는 이런 식으로 곧잘 자기를 속인다. 본 적 없는 장면을 이미 본 것 같다고 우기는 데자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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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가지 더. 이게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면 세계관 백파이어인데, 사람들이 떼로 모이면 또 다른 얼굴이 된다. 온라인에서 누군가를 향해 무리가 몰려들 때, 그 안에서는 '저 사람이 틀렸다'가 어느새 소속의 증표가 돼버린다. 그렇게 되면 어떤 팩트를 내밀어도 그건 정정이 아니라 무리에 대한 배신으로 읽힌다. 그 타겟이 된, 한복판에 선 낙인 찍힌 사람은 사실 관계고 뭐고 설명할 틈도 없이 욕과 위협만 듣게 된다. 소위 양념질을 당하게 되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한명 한명의 비난, 욕설의 다양한 배리에이션을 경험하게 된다. 과연 다이내믹한 경험이라고 평가하기엔.. 실제로 당해보면 많이 무섭지.

 

각설하고, 어쨌든,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통념은 '신념 앞에서 정정 사실은 안 통한다'였다. 하지만 재현 연구에서 큰 규모로 다시 검증해보니 '아니다, 팩트는 대체로 사람들에게 통한다'로 뒤집혔다. 그런데 한 겹 더 들어가보면, '믿음이 신념이나 정체성 수준으로 굳어진 영역에서는, 여전히 사실이 안 통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 같고, 이 가설은 경험상 통하는 듯도 보인다. 물론 객관적인 실험을 해서 가설을 증명해 낸 것은 아니지만.. 통념의 반전과 재반전. 결국 핵심은 그 믿음이 그 사람에게 '단순한 정보'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일부'인지에 달린 것이 아닐까.

 

그게 단지 '정보'일 땐 바뀐다. 그게 나 자신의 일부인 '신념'이 되면, 그땐 좀 다르다.

 

그럼, 상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백파이어가 드물다고는 해도, 정정 사실의 잔상(지속 영향 효과)은 남고, 신념화된 영역에선 여전히 안 통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정정 사실을 상대에게 '어떻게 말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다. 이와 관련한 전달 기법에 대해 찾아본 것 중 그럴듯한 방법 두 가지를 적어둔다. 나중에 써먹어야지.

 

하나는 진실 샌드위치(truth sandwich)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제안한 건데, 구조가 단순하다. 먼저 이야기하려는 주제와 관련한 명백한 진실, 팩트로 시작하고, 거짓은 가운데에 짧게만 짚거나 반박, 다시 우리의 핵심 사실, 진실로 끝낸다. 거짓의 표현을 굳이 증폭하거나 길게 끌고가지 말고, 진실을 더 자주 반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능하면 거짓은 아예 언급하지 않고 사실만 말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아, 그건 샌드위치가 아닌가?

 

다른 하나는 사전 반박(prebunking), 또는 '심리적 예방접종(inoculation)'이다. 1960년대 윌리엄 맥과이어가 제안한 접종 이론에 뿌리를 둔 방법으로, 약한 형태의 공격에 미리 노출시키면 이후의 설득 시도에 대한 저항력이 커진다는 원리다. 백신과 똑같은 발상이다. 거짓이 퍼진 뒤에 쫓아다니며 정정하는 것보다, 거짓을 만나기 전에 '이런 수법에 속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미리 면역을 주는 쪽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사람을 바보 취급하며 '틀렸어, 이게 팩트야'라고 들이미는 것보다, 진실을 먼저 깔고 차분히 말하거나 아예 미리 면역을 주는 쪽이 낫다는 거다. 다만 신념이 종교 수준으로 굳어진 상대에게는.. 솔직히 이것도 잘 통할지 모르겠다.

 

추가로.. 재밌게도, 모국어가 아니라 외국어로 따질 때 사람이 좀 더 냉정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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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접근방법. 재현이라는 잣대

정리하면서.. 가장 마음에 남은 건 따로 있다. '백파이어 이펙트'라는 유명한 개념이, 정작 다시 실험해보니 거의 재현되지 않았다는 그 과정 자체다.

 

2010년대 심리학에는 '재현 위기(replication crisis)'라는 말이 있었다.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했던 효과들이 막상 다시 해보니 줄줄이 안 나오던 시기. 백파이어 이펙트도 그 흐름 위에 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게 심리학의 약점이라기보다 오히려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한 번 나온 결과는 의심하고 다시 해봐야 한다는 것. 과학자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잣대가 제대로 작동하니까 유명한 효과도 '음, 생각보다 약하네' 하고 교정된 거다.

 

그리고 살짝 농담을 보태자면, 백파이어 이펙트야말로 좀 얄궂은 운명이다. '사람들은 정정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주장한 개념인데, 정작 그 개념 자체가 '재현 안 된다'는 정정 사실을 만났으니까. 그 정정 사실을 우리는.. 잘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 글을 쓰는 나부터도 확증 편향에 기대고 싶고, '정정 사실이 안 통하더라'는 냉소가 더 그럴듯하게 느껴져 굳이 신념 수준에선 다르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가설을 던져놓는 걸 보면, 사람 마음이란 게 참.

 

한 번 나온 결과는 관찰 대상이다. 관찰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가설에 따라 변인을 통제한 뒤 재현 실험을, 반복 한다. 그리고 반복 데이터가 쌓여야 가설이 증명되는 것이다.

 


글 닫기 전에..

그래서 사실로 반박하면 역효과가 난다는 이야기?

대체로는 아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사실 정정을 잘 받아들인다. 다만 그 믿음이 정체성이나 신념 수준으로 굳어져 있고 정정이 공격처럼 느껴지는 특정 조건에서는 역효과가 날 수 있는게 아닐까. '항상 그렇다'가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가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백파이어 이펙트는 가짜 개념인가?

가짜라기보다 '과대평가됐던 개념'에 가깝지 않나 싶다. 처음엔 일반 법칙처럼 받아들여졌지만, 큰 규모로 다시 검증하니 드문 예외였다는 거다. 뭐, 어쨌든 역효과가 났던 사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대신 정정 뒤에도 잔상이 남는 '지속 영향 효과'는 꽤 탄탄하게 살아남았다.

 

그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였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이 글은 거기에 답하는 글이 아니다. 용지가 부족했던 건 사실이고, 고의였는지는 아직 안 밝혀졌다. 그건 조사가 답할 일이지 내가 단정할 일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됐느냐는 거다. 양쪽 다.

 

누굴 설득하고 싶을 때 제일 쓸모 있는 한 줄은?

윽박지르지 말 것. 진실을 먼저 말하고, 가능하면 상대가 거짓을 만나기 전에 미리 면역을 줄 것. 그리고 상대의 믿음이 이미 신념이 됐다면.. 사실 그땐 기대를 좀 낮추는 게 마음 편하다. 아마도.


오늘은 여기까지. 나도 처음 듣는 키워드를 따라가며 정리한 거라, 틀린 데가 있으면 언제든 다시 고칠 생각이다. 여기에 또 백파이어가 없어야 할텐데 ㅎㅎ

 

마무리하며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사실이 밝혀지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다만 그 사실이 내 신념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우리 대부분은 생각보다 꽤 합리적이라는 것. 그거 하나는 이번에 배웠다. 그러니 부디, 이번 투표용지 부족 건도 빨리 사실관계가 밝혀지길 바란다. 그래야 받아들이든 따지든 할 테고. 나는, 내 자신이, 앞으로 밝혀지는 사실에 대해 백파이어 터뜨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계속해서 되돌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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