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얼룩말은 왜 줄무늬일까? 초원에서 흑백 줄무늬는 너무 튀는데, 위장이 맞을까? 원인은 사실 흡혈파리라고?

위장설, 포식자 혼란설, 체온조절설을 거쳐 흡혈파리 회피설에 도달한 얼룩말의 얼룩무늬 진화 요인 탐구 이야기.

그런데 줄무늬가 왜 파리를 막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얼룩말은 왜 얼룩무늬를 갖게 되었을까? 원인이 파리 때문이라는데..

 

 

며칠 전 코스트코에서 샤프를 몇 자루 사 왔다. Zebra 샤프. 미리 이야기 해 두지만, 딱히 이 샤프를 광고하거나 제품 리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필기구를 쓸 일이 거의 없다. 직업 특성상 하루 종일 키보드만 두드리고, 어쩌다 손으로 뭘 적을 일이 있어도 갤럭시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에 S펜을 긁어대는 게 전부다. 그러니 내가 쓰려고 산 건 당연히 아니고, 애들 쓰라고 산 거다. 브랜드 자체는 내가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면 뭐, 그만큼 유명한 곳일거고, 펜을 몇 번 써 보니 나쁘지 않았어서 그냥 샤프도 좋겠거니..하고 집어온 정도.

 

그런데 내 생각의 가지는 늘 이상한 데서 발동이 걸려서 이상한 데로 뻗어나가곤 한다. 오늘은 이 'Zebra'라는 글자에 꽂혀버렸다.

 

Zebra. 얼룩말.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 산다는, 그 얼룩말.(???: "허, 허,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는, 얼룩말이 있습니다?) 얼룩말은 얼룩무늬가 있지. 그런데.. 가만, 왜 얼룩말의 무늬는 얼룩이지? 누런 초원에서 흑백 얼룩무늬는 너무 튀는 거 아닌가?

 

이 생각의 가지가 한번 뻗더니 멈추질 않아서, 결국 검색하고, 조사하고, 정리하다가.. 이 글이 태어나고 말았다. 정작 샤프는 아직 한 번도 안 썼는데. 사실 여기서 내 생각의 가지는 한번 더 뻗어나가서 신생아들이 흑백 무늬를 먼저 식별하기 시작하다가 색채를 식별하는, 시력의 발달 과정과 아기 침대 위에 매달아 놓는 모빌의 색상까지 뻗어가는 중이었다. 이걸 내버려두면 우주로 가거나 존재의 본질, 양자 역학과 쿼크 입자 등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중간에 제동을 걸어줘야 한다. ㅋㅋ

 

샤프 한 자루에서 시작된 생각이.. 결국 여기까지 왔다

 

어쨌든, 일단, 알고 보니 이건 다윈 시대부터 내려온 떡밥이라고 한다. 한 150년쯤 묵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달려들어 도달한 결론은 조금 뜬금없었다고 할까. 정리해보자.

 

일단 가설 후보부터.

얼룩말 줄무늬에 대해 학자들이 내놓은 설명은 대충 다섯 가지로 모인다고 한다.


가설 한 줄 요약 결론
위장설 풀숲, 나무 그늘에 섞여 포식자 눈을 피한다 기각
포식자 혼란설 떼로 달릴 때 줄무늬가 어른거려 사자가 목표를 못 정한다 거의 기각
체온조절설 검은 줄, 흰 줄의 온도차로 공기가 돌아 몸을 식힌다 기각
사회적 인식설 무리끼리 서로 알아보고 유대를 다진다 약함
흡혈파리 회피설 줄무늬가 흡혈 파리를 못 앉게 한다 살아남음

다섯 개 중에 넷이 떨어지고 하나가 남는 과정인데, 떨어지는 모양새가 제각각이라 보는 재미가 있다. 하나씩 가보자.

 

후보 다섯. 넷이 떨어지고 하나가 남았다

 

가설 1, 위장설 - 그러나 사자에겐 안 통하더라

가장 직관적인 가설이다. '얼룩말의 천적' 하면 역시 아무래도 사자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때문에 아마도, 얼룩말이 얼룩 무늬를 갖도록 진화한 배경에는, 이 천적과의 관계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나온게 이 가설이다. 얼룩말의 줄무늬가 풀숲이나 아지랑이에 섞여서 사자 눈을 속인다는 것. 내가 샤프를 보며 처음 떠올린 의심도 사실 여기에 걸쳐 있었다. 누런 초원에서 흑백이 무슨 위장이냐는 의심.

 

그런데 여기엔 좀 김빠지는 반박이 있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의 팀 카로(Tim Caro)라는 생태학자가(이 주제로 십수 년을 매달린 사람인데), 동료들과 함께 사자랑 하이에나가 도대체 얼마나 멀리서 얼룩말 줄무늬를 알아볼 수 있는지를 계산했다고 한다. 낮에, 황혼에, 달 없는 밤에 각각.

 

결론은 이랬다. 사자가 줄무늬를 '줄무늬로' 알아볼 만큼 가까워진 거리쯤이면.. 사자는 이미 냄새랑 소리로 얼룩말이 거기 있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다는 것이다. 줄무늬가 시야에 들어올 때면 게임은 이미 끝난 뒤라는 얘기다..라고 한다. 2016년 연구다.

 

게다가 사자는 야행성으로 낮에는 자고, 주로 밤에 사냥한다. 흑백 줄무늬가 위력을 발휘하려면 환할 때여야 할 텐데 정작 사냥은 어두울 때 벌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얼룩말은 사자가 제일 좋아하는 먹잇감 중 하나다. 위장이 목적이었다면 이건 성적표가 영 별로 아닌가? 으음.

 

사자가 줄무늬를 알아볼 거리면, 위장이고 뭐고 이미 다 들킨 뒤다

 

가설 2, 포식자 혼란설 - 이건 따로 글 한 편 감이다

이 가설의 주제는, 또 생각의 가지가 엉뚱한 곳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점이다. 길게 풀면 글이 산으로.. 아니, 바다로? 갈 것 같으니 우선 참아본다. 이 주제도 따로 글 한 편 뚝딱일 것 같은데.. 기회 되면 제대로 한번 다뤄봐야지.

 

어쨌든, 이 가설에 대해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얼룩말이 떼로 우르르 달리면 줄무늬들이 겹치고 어른거려서, 쫓는 사자 입장에선 어디가 한 마리인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빨리 가는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모션 대즐(motion dazzle)'이라는 멋진 이름이 붙어 있다. 1차 세계대전 때 군함에 일부러 어지러운 줄무늬를 칠해서 적의 조준을 방해하던 '대즐 위장'에서 따온 말이다.

 

솔깃하고 그럴싸하다. 그런데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랑 통제된 실험으로 따져보니 증거가 엇갈렸다고 한다. 줄무늬가 특정 조건에서 움직임 추적을 흐트러뜨리긴 해도, '얼룩말이 줄무늬를 갖게 된 이유'라고 할 만큼 강하게 작동하진 않더라는 것. 이 가설이 완전히 기각되어 죽은 건 아니고, '엉덩이 쪽의 줄무늬가 포식자에게 영향을 좀 주는것 같긴 한데..?' 같은 잔불은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쨌든 적어도 주연은 아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군함에 칠하던 대즐 위장과 무리지어 달리는 얼룩말. 이 얘기 역시 풀어놓자면 한가득일 듯하니 기회 되면 다음에 더 파보자.

 

그리고 결국 이 이야기를 더 파보았다.

2026.06.17 - [인지, 심리] - 과거의 군함이 알록달록 줄무늬를 칠했던 이유? - 모션 대즐과 대즐 위장(카모플라쥬) 이야기

 

과거의 군함이 알록달록 줄무늬를 칠했던 이유? - 모션 대즐과 대즐 위장(카모플라쥬) 이야기

대즐 위장, 대즐 카모플라쥬(dazzle camouflage)는 1차대전에서 군함을 숨기는 대신 알록달록 줄무늬로 칠해 적의 눈을 헷갈리게 한 위장술이다. 모션 대즐 착시의 원리, 잠망경 너머에서 정말 효과가

lostuni.tistory.com

 

가설 3, 체온조절설 - 실험해보니 영 아니더라

이건 반박 방식이 제일 깔끔하고 명쾌하다.

 

가설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검은 줄은 햇빛을 더 받아 뜨거워지고 흰 줄은 덜 뜨거워지니까, 그 온도차로 줄과 줄 사이에 작은 공기 흐름이 생겨서.. 즉 바람이 살살 불어서? 몸을 식혀준다는 가설이다. 그럴싸한가?

 

2018년에 한 연구진이 이걸 아주 단순무식하게 검증했다. 물통을 이용해서. 왜 하필 '물통'을 가지고 실험을 했을까? 이건 이런 가정이 전제로 깔린다. 우선 우리 몸의 70% 이상이 물이라고 하는데, 얼룩말도 일단 덩치 큰 포유류니 몸의 물 비율이 높을 거다. 그러니 물을 채운 통은 얼룩말의 몸을 흉내 내기에 완벽하진 않아도 의외로 어느정도는 괜찮은 모델인 셈이 아닐까.

 

그런데 물은 비열이 높다. 쉽게 안 뜨거워지고 쉽게 안 식는다. 얼룩말처럼 덩치 큰 동물 몸은 더더욱 그렇다. 줄무늬 표면에서 자잘한 온도차가 생긴들, 그 큰 물덩어리의 체온을 휘저을 만큼은 아닐 거라는 짐작이 든다.

 

지인중에, 여름에 어항 물 온도를 낮추겠다고 펠티어 소자에 쿨러, 온도계, IoT 스위치까지 조합해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동으로 어항 수온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던 사람이 있다. 멋지지 않나? 그런데 결국 효과가 미비해서, 기껏 만든 장비를 당근에 팔아버리는 걸 봤다. 물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물론 어항 물의 절대량이 적으면 효과가 좀 더 있긴 할 거다. 하지만 얼룩말 한 마리가 몸에 포함하고 있는 부피의 물은.. 게다가 자체적으로 신진대사에 의해 열을 발생시키고 있는 열 덩어리라면.. 음.. 글쎄.

 

어쨌든, 2018년 실험은 이랬다. 금속 물통 여러 개에 물을 채우고 겉에 진짜 말가죽, 소가죽, 얼룩말 가죽을 씌우거나 검정, 흰색, 회색, 줄무늬를 칠해서 야외에 넉 달을 세워놨다. 그리고 통 한가운데 물 온도를 계속 쟀다. 진짜 얼룩말 몸 표면 온도랑도 비교하고.

 

결과는? 줄무늬 통이랑 회색(줄무늬 없이 평균 밝기만 맞춘) 통 사이에 중심 온도 차이가.. 딱히 없었다고 한다.. 뜨거운 날에도. 바람 세기랑 기온이랑 상관없이. 줄무늬가 몸을 식혀준다는 증거가 안 나온 거다. 물통을 이용한 실험 한 방에 정리됐다. 깔끔하다. QED.

 

아마 대략 이런 느낌으로 셋팅해서 실험하지 않았을까. 물통에 가죽을 씌워 넉 달, 그러나 줄무늬와 회색의 온도차는 없었다

 

자, 그래서, 남은 건? - 파리

위장도 아니고, 포식자 혼란도 주연은 아니고, 체온조절도 아니다. 그러면 사실 사회적 인식설 차례이긴 한데..

 

말하자면 개체간 식별, 무리의 구분 이런 측면으로 보는것이다. 하지만 이건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론..' 정도라 길게 안 끌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 가설이 더 명확해보여서 굳이 사회적 인식설을 붙잡고 더 조사해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럼 결론이 뭐였나. 카로 연구진이 결국 도달한 답은, 파리다. 흡혈 파리. 천적이나 기후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피 빠는 파리가 몸에 못 앉게 하려고 이 화려한 흑백 무늬가 진화했다는 것이다.

 

근거가 있냐고? 물론, 게다가 제법 일관된 증거가 있다. 카로 연구진이 말과 동물, 그러니까 얼룩말, 당나귀, 야생말 종류들을 쭉 비교했더니, 줄무늬가 진하고 촘촘한 종일수록 그 동물이 사는 지역에 체체파리, 등에 같은 흡혈 파리가 많더라는 것이다.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포식자가 많은 지역도 아니고, 더운 지역도 아니고, 숲이 우거진 지역도 아니고.. 오직 흡혈 파리 분포랑 줄무늬가 맞아떨어졌다. (2014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천적도, 기후도 아니고, 범인은 흡혈 파리였다

 

왜 하필 얼룩말이 파리에 그렇게 민감했냐면, 얼룩말은 다른 말과 동물보다 털이 유난히 짧고 성글어서 파리가 주둥이를 꽂기 쉽다고 한다. 게다가 흡혈 파리는 단순히 가렵게만 하는 게 아니라 치명적인 기생충도 옮긴다. 이게 단순히 파리가 앉는게 귀찮은 문제가 아니라, 물려서 병 걸려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문제라면, 파리를 막는 무늬가 살아남는 데 결정적이었다는 건 말이 된다. 왜, 매 해마다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동물이 사자, 호랑이, 곰, 상어 같은 맹수도 아니고 거미, 지네, 뱀 같은 맹독을 가진 동물도 아닌 모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흡혈 파리 역시 얼룩말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동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 해마다 모기한테 가족중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사람으로서 격하게 공감한다. 나만 무는 모기에 대한 이야기도 따로 글을 써 놨을 정도니까.

 

2026.06.06 - [자연, 과학] - 혈액형 때문일까? - 나만 자꾸 무는 모기 이야기

 

혈액형 때문일까? - 나만 자꾸 무는 모기 이야기

낚시와 캠핑은 재작년에 새로 갖게 된 취미다. 4월, 5월까지는 이 두 취미 모두 정말이지 쾌적하고 즐겁다. 날도 좋고 바람도 적당하고. 그런데 6월로 넘어가면서 날이 슬슬 더워지면, 어김없이

lostuni.tistory.com

 

줄무늬 입은 소, 줄무늬 입은 사람

말로만 하면 안 믿을까 봐 시도해 본 것 같은 이런 저런 실험들이 있는데, 실험들이 꽤 귀엽(?)다.

 

카로 본인은 줄무늬 옷이랑 단색 옷을 직접 입고 서서 파리가 몇 마리나 앉는지 셌다고 한다. 진짜로. 줄무늬 정장 같은 걸 맞춰 입고 아프리카 들판에 서 있는 교수님이라니. 또 어떤 연구진은 말한테 흰 천, 검은 천, 줄무늬 천을 번갈아 씌우고 파리가 얼마나 붙는지 봤는데, 줄무늬 천을 씌웠을 때 파리가 확연히 덜 앉더랜다.

 

줄무늬 정장을 맞춰 입고 파리를 세는 교수님이라니. 뭐, 물론 조교가 했겠지만.

 

이런 실험도 있다. 일본 연구진이 진행한 소 실험인데(2019년 PLOS ONE), 검은 소(일본 흑우)들한테 흰색 페인트로 얼룩말 줄무늬를 그려넣고, 아무것도 안 그린 소, 검은 줄만 그린 소랑 비교했다. 그랬더니 흑백 줄무늬를 그린 소에 붙은 흡혈 파리 수가 다른 소들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페인트 냄새 때문일 수도 있기때문에, 비교군으로 넣은 검은 줄만 그린 소도 포함했지만 이 경우에는 효과가 없었으니, 냄새가 아니라 '흑백 무늬'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학술적 호기심이 아니라, 진짜 목축 현장에서 파리 피해 줄이는 데 써먹을 수 있는 얘기다. 실제로 말한테 입히는 줄무늬 옷도 판다는 모양이다.

 

그럼 나도 캠핑이나 낚시 갈 때 줄무늬 옷을 입으면.. 벌레가 좀 덜 꼬일까? 라고 잠깐 기대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실험들은 전부 '흡혈 파리'에 대한 거였다. 등에 같은. 그런데 캠핑이나 낚시 가서 나한테 달려드는 건 파리가 아니라 모기다. 모기.. 흡혈 파리랑 모기는 다른 곤충이고, 모기가 줄무늬에 똑같이 헷갈릴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줄무늬 옷을 입어봐야 모기 앞에서는.. 아마 별 소용 없을 것 같다. 그 녀석들이 줄무늬 좀 무서워해주면 좋으련만.

 

그런데, 파리는 얼룩 무늬에 대체 '왜' 앉지 않는 것인가

자, 여기까지 오면 깔끔하게 끝난 것 같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질문이 아직 안 풀렸다.

 

줄무늬가 파리를 막는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왜' 막는가? 파리 눈에 줄무늬가 어떻게 보이길래 못 앉는 걸까?.. 이게 아직도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후보 설명이 몇 개 있긴 하다.

 

하나는 '움직임 착시(옵틱 플로우.. 교란?)'. 파리가 착지하려고 다가올 때 줄무늬가 시각 정보를 흐트러뜨려서 거리, 속도 감을 못 잡게 한다는 것. 나는 이것을 약간.. 뭐랄까, 포장마차나 시장 같은 곳에서 비닐 장갑에 물 채워서 매달아 놓는 게 이런 원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쨌든, 실제로 2019년 영상 분석을 보면, 흡혈 파리가 보통은 착지 직전에 속도를 줄이는데(우리가 의자에 앉을 때 엉덩이 속도를 줄이듯), 얼룩말한테 다가갈 땐 끝까지 속도를 안 줄이고 그냥 들이받거나 휙 스쳐 지나가버린다고 한다. 마치 거기 뭐가 있는지 못 본 것처럼. 그런데 이 옵틱 플로우 설명에도 반박이 있다. 줄무늬뿐 아니라 체크무늬한테도 파리가 똑같이 안 앉았는데, 옵틱 플로우 교란 이론대로면 나란한 줄무늬에서만 효과가 나야 하거든.. 그래서 이것도 딱 맞아 떨어지진 않는다.

 

또 하나는 '편광(polarization)' 설. 암컷 흡혈 파리는 수평 편광된 빛에 잘 꼬이는데, 검은 줄은 편광을 강하게 반사하고 흰 줄은 거의 안 한다 그냥 다 반사하는 거니까. 그래서, 줄무늬가 편광 신호를 흐트러뜨린다는 가설이다. 근데 이것도 야생 얼룩말에선 흑백 줄의 편광 차이가 생각보다 작더라는 반박이 있어서.. 역시 미해결.

 

재밌는 사실은, 파리는 넓은 줄무늬든 좁은 줄무늬든 가리지 않고 똑같이 싫어한다고 한다. 줄무늬가 '있기만' 하면 작동한다는 것. 그러니까 무늬의 정밀한 디자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흑백 대비 자체가 파리를 쫓는 모양이다. 이것도 연구가 진행된다면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그.. 뭐랄까, 마무리. 결론. 아무튼 뭐 그런거.

정리하면 이렇다. 얼룩말의 줄무늬는 숨으려는 것도, 사자를 헷갈리게 하려는 것도, 더위를 식히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 거창한 후보 가설들을 다 제치고 남은 답은, 흡혈 파리를 못 앉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어쨌든 맞는것 같긴 한데, 정작 그 줄무늬가 '어떻게' 파리를 못 앉게 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젠 얼룩말 줄무늬를 보면, 저 화려한 무늬가 사실은 '벌레 좀 그만 와' 라는 절박한 외침이었구나 싶어 좀 짠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오죽 시달렸으면..

 

자연이 내놓은 답은 늘 우리 예상보다 시시하면서, 동시에 우리 예상보다 정교하다. 위장이라는 우아한 답을 기대했는데 정답이 파리라니. 근데 그 파리 하나가 종의 생사를 가른다는 걸 생각하면, 또 그렇게 시시한 답도 아닌듯도 하고.

 

그래서 새로 산 샤프는.. 애들 하나씩 주고 2개가 남았는데.. 내가 이걸 언제 한번 쓰긴 쓸까? ㅎㅎ

 


글 닫기 전에..

얼룩말은 흰 바탕에 검은 줄인가, 검은 바탕에 흰 줄인가?

검은 바탕에 흰 줄에 가깝다고 한다. 발생 초기 얼룩말 배아의 바탕 피부는 검은색이고, 거기에 흰 줄이 나중에 그려지는 식이라고. 그러니까 '검은 말인데 흰 줄을 입은' 쪽이 진실에 가깝다. 흰 말에 검은 줄.. 이 아니라는 게 좀 반전이다.

 

그래서 얼룩말의 줄무늬는 위장이 아예 아닌 것인가?

'사자한테서 숨는 위장'은 거의 아니라고 본다. 사자가 줄무늬를 알아볼 거리면 이미 냄새, 소리로 위치를 다 파악한 뒤라서. 다만 움직일 때 생기는 착시(포식자 혼란)는 잔불 정도로 논쟁이 남아 있긴 하다. 주 원인은 아니고 부수적인 원인쯤?

 

줄무늬 옷 입으면 진짜 벌레가 덜 꼬이나?

파리 또는 등에 종류는 덜 꼬일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실제로 말한테 입히는 줄무늬 옷이 팔리고 있고.. 소에 줄무늬 칠해서 파리를 절반으로 줄인 실험도 있으니까. 다만 캠핑, 낚시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모기한테도 통하는지는 또 다른 얘기. 모기를 유인하는 요소중에 무늬는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 결국 줄무늬는 왜, 어떻게 파리를 막는가?

모른다. 움직임 착시설, 편광설 같은 후보는 있는데 둘 다 반박이 붙어서 확정이 안 됐다. '막는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은데 '어떻게, 왜'는 미해결. 과학 분야에 이런 상태인 문제는 사실 은근히 흔하다.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6/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