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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냄새의 정체?! 가 뭐냐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게 인지상정

 

어제 출근길에는 우산도 안 챙겼는데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진다 싶더니만, 훅 하고 그 냄새가 끼쳤다. 비가 아직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공기가 먼저 '이제부터 비 온다?'고 알려주는 그 냄새. 다들 알 거다. 흙 같기도 하고, 어딘가 축축하고,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그 냄새.

 

비는 아직 안 왔는데 공기가 먼저 알려준다. 비 올거라고.

 

우리는 그걸 그냥 '비 냄새'라고 부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비는, 그러니까 빗물 그 자체는 사실상 증류수에 가깝다. 공기중의 수증기가 공중으로 올라가서, 응집했을 뿐이니까. 아무 냄새도 안 난다. 물론 그게 다시 땅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공기중에 먼지를 머금고 내려오기는 하겠지. 실제로 비가 조금만 내리고 그치면 차에 생기는 빗자국이 엄청 많아지니까.. 그러면 그 비 냄새는 결국 먼지 냄새인걸까? 하지만 먼지 냄새라고 하기엔 또 뭔가 이상하다. 비가 공기 맑을때 내리든 황사 심할때 내리든 어쨌든 비냄새는 계속 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맡는 그 냄새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그래서 검색해보니 결론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그건 사실 빗방울의 냄새가 아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비 냄새'라는 이름부터 살짝 틀렸다

이 냄새에는 멀쩡한 학술 이름이 있다. '페트리코어(petrichor)'. 1964년 3월, 호주의 두 광물학자 이자벨 조이 베어와 리처드 그렌펠 토머스가 네이처에 딱 한 쪽짜리 논문을 내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 학자들은 이 냄새를 '점토질 냄새(argillaceous odour)' 정도로 적당히 대충 불렀다고 한다. 페트리코어는 그리스어로 돌을 뜻하는 'petra'와, 신화 속 신들의 혈관에 흐른다는 영액을 뜻하는 'ichor'를 합친 말이다. 돌에 흐르는 신의 피라니, 작명 센스가 좀.. 멋있다. 저런 이름은 어떻게 짓는건지.. 나는 작명 센스가 없어서 게임을 할 때도 캐릭터 이름 정하는데 30분을 고민하는 사람이거든.

 

'돌에 흐르는 신의 피'라는 의미의 페트리코어,

 

그런데 페트리코어는 정확히는 '현상의 이름'이고, 그 냄새의 진짜 주범한테는 따로 이름이 있다. '지오스민(geosmin)'이다. 이것도 그리스어인데, 흙을 뜻하는 'geo'와 냄새를 뜻하는 'osme'를 합쳤다. 그러니까 이건 이제 이름부터가 대놓고 '흙냄새'다. 우리가 비 냄새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는, 사실 흙냄새였던 거다. 더 정확히는, 흙 속에 사는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화합물 냄새다. 비는 그냥 그 냄새를 공기 중에 퍼뜨리는 배달부였을 뿐이고.

 

사실 냄새는 하나가 아니라 셋이다

여기서 한 번 더 갈라진다. 우리는 '비 냄새'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실은 시점에 따라 서로 다른 화합물 셋이 섞여 있다.

 

언제 냄새의 정체 어디서 오나
비 오기 직전 오존 번개가 공기 중의 산소를 때려서 만듦
비 올 때 지오스민 흙 속 박테리아가 만듦
비 올 때 식물 기름 가뭄에 식물이 분비해 흙에 쌓임
 

비가 오기 '전부터' 냄새를 맡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건 보통 오존 냄새다. 멀리서 번개가 치면 대기 중 산소와 질소 분자가 쪼개졌다가 재결합하면서 오존이 만들어지는데, 이게 바람을 타고 날아와 비보다 먼저 우리 코에 도착한다. 날카롭고 깨끗한, 좀 쇠 비린내 같기도 한 그 냄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비 냄새'라고 부르는 건 사실 비 직전의 오존과, 비가 흙을 때릴 때 올라오는 지오스민과 식물 기름이 한 세트로 묶인 거였다. 한 단어 안에 화합물 세 개가 들어앉아 있었던 셈이다.

 

한 단어 안에 냄새가 세 개나 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자그마치 3개의 화합물이 조합된 컴비네이션이라고..)

 

그런데 인간은 이 냄새에 좀 미쳐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인간은 지오스민 냄새를 정말 말도 안 되게 잘 맡는다고 한다. 보통 공기 중 5 ppt, 그러니까 1조분의 5 정도 농도에서도 이 냄새를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게 감이 안 오는데, 흔히 드는 비유가 이렇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을 가득 채운 물에 지오스민 한 방울. 혹은 올림픽 수영장 200개 분량의 물에 딱 한 티스푼. 그걸 우리 코가 알아챈다.

 

심지어 어떤 자료에서는 '상어가 물속 피 냄새 맡는 것보다 인간이 지오스민 맡는 게 20만 배쯤 민감하다'고도 한다. 이 비교는 좀 캐주얼하게 인용되는 거라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지만, 방향은 맞다. 우리는 알려진 물질 중에서도 손에 꼽게 예민하게 이 냄새를 감지한다.

 

수영장 한 가득에 한 방울. 그걸 코가 알아챈다.

 

정작 그 냄새를 맡는 코는 한쪽씩 번갈아 가며 일을 쉬고 있다는데..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감기도 아닌데 한쪽씩만 코가 막힌다? - 코가 한쪽씩 번갈아 막히는 '비주기 현상' 이야기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한쪽 코만 막히고 돌아누우면 반대쪽이 막히는 경험. 감기나 비염 탓이 아닐 수 있다. 건강한 코도 몇 시간마다 콧구멍을 번갈아 쓰는 '비주기 현상' 때문이다. 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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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그럴까. 어떤 신호를 이렇게까지 낮은 농도에서 잡아낸다는 건, 그 신호가 그 생물한테 그만큼 중요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물이 진화할 때에는, 공짜로 그렇게 예민한 센서를 달고 다니도록 진화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여름이면 냄새를 미친듯이 예민하게 맡고 기가 막히게 나를 찾아내 덤벼드는 모기도, 결국 번식을 위해 그렇게 진화한 것이니까.

 

 

혈액형 때문일까? - 나만 자꾸 무는 모기 이야기

낚시와 캠핑은 재작년에 새로 갖게 된 취미다. 4월, 5월까지는 이 두 취미 모두 정말이지 쾌적하고 즐겁다. 날도 좋고 바람도 적당하고. 그런데 6월로 넘어가면서 날이 슬슬 더워지면, 어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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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은 단정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이 냄새에 민감해지도록 진화했다는 가설의 경우, 우리 조상이 마른 땅에서 물이나 비옥한 땅을 찾아다닐 때 이 냄새가 길잡이가 됐을 거라는 이야기가 그 주장의 근거다. 흙냄새가 난다는 건 근처에 축축하고 미생물이 활발한, 즉 물과 생명이 있는 땅이라는 신호니까. 실제로 낙타가 사막에서 이 냄새를 맡고 멀리 떨어진 오아시스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비 냄새를 맡으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거.. 어쩌면 이 느낌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우리 안에 아주 오래된 '물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유전자 레벨에까지 박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랑비가 폭우보다 냄새가 진한 이유

그럼 흙 속에 있던 냄새는 어떻게 공기 중으로 떠오를까. 이걸 2015년에 MIT의 영수 정(Youngsoo Joung)과 컬런 뷰이(Cullen Buie) 연구진이 고속 카메라로 잡아냈다.

 

빗방울이 흙처럼 구멍 많은 표면에 떨어지면, 부딪히는 순간 빗방울 안에 아주 작은 공기 방울들이 갇힌다. 이 공기 방울들이 빗방울 속을 타고 위로 올라가서 표면에서 톡톡 터지는데, 이때 탄산수 거품 터지듯 미세한 물방울, 에어로졸이 사방으로 분사된다. 그 에어로졸이 흙에 있던 지오스민과 식물 기름을 싣고 공기 중으로 퍼지는 거다. 빗방울 하나가 순식간에 수백 개의 향기 에어로졸을 뿜어낸다고 하니, 흙 입장에서는 자기만의 디퓨저를 가동하는 셈이다.

 

빗방울 하나가 작동시키는 향기 디퓨저.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일러스트입니다)

 

여기서 좀 반전인 사실. 아니, 다들 가만히 기억을 되돌아보면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거다. 이 냄새는 폭우가 쏟아질 때보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을 때 더 진하게 난다. 처음엔 이게 직관에 안 맞았다. 비가 많이 오면 냄새도 더 날 것 같잖아. 그런데 빗방울이 너무 세게, 너무 빨리 쏟아지면 이 공기 방울 가두는 메커니즘이 무너진다. 구멍이 물에 잠겨버려서 거품이 빠져나올 틈이 없는 거다. 반대로 느릿느릿 떨어지는 가랑비는 공기 방울을 알뜰하게 가뒀다가 터뜨린다. 그래서 비 냄새가 가장 강한 건 보통 가랑비가 막 시작된 첫 몇 분이다. 장맛비가 한참 퍼붓는 한복판이 아니라.

 

사실 그 냄새의 목적지는 우리, 인간이 아니다.

자, 그런데 이제 여기서 재미있는 건, 그렇게나 이 냄새에 민감하게 진화해온 인간은 사실 이 냄새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지오스민을 만드는 건 흙 속의 방선균, 그중에서도 스트렙토미세스라는 박테리아다. 그런데 2020년 네이처 미생물학에 실린 연구(Becher 연구팀)를 보면, 이 박테리아는 아무 때나 지오스민을 뿜는 게 아니라 사실은 '포자를 만들 때만' 뿜는다. 지오스민 만드는 유전자가 포자 형성을 켜는 스위치랑 직접 연결돼 있더라는 거다. 즉 이 냄새는 박테리아가 '나 이제 포자 퍼뜨릴 준비 됐다'고 켜는 신호였다.

 

발밑에서 벌어지는 4억 5천만 년 된 거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일러스트)

 

그럼 그 신호는 누구한테 보내는 걸까. 사람한테? 아니다. '톡토기'한테 보내는 거다. 톡토기는 흙 속에 사는 아주 작은 절지동물인데, 이 친구들이 지오스민 냄새에 끌려서 박테리아 쪽으로 모여든다. 실제로 톡토기 더듬이에 지오스민을 갖다 대면 전기 신호가 잡힌다고 한다. 톡토기는 와서 박테리아를 먹는다. 신기한 건, 스트렙토미세스는 다른 벌레들(선충이나 초파리)한테는 독이 되는 항생물질을 뿜는데, 톡토기는 그걸 해독하는 효소를 갖고 있어서 멀쩡히 먹어치운다.

 

그리고 그 대가로 톡토기는 박테리아의 포자를 온몸에 묻혀서, 또 똥으로 싸서 여기저기 퍼뜨려준다. 박테리아는 밥을 내주고 자식을 멀리 보내고, 톡토기는 밥을 먹고. 벌이 꿀 얻고 꽃가루 옮겨주는 거랑, 새가 열매 먹고 씨앗 퍼뜨리는 거랑 완전히 똑같은 구조다. 연구진은 이 거래가 무려 4억 5천만 년쯤 이어져 왔다고 본다.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키우기 시작한 지렁이 사육상자. 톡토기 사진은 찍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음쓰가 같이 찍히..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는 좀 웃겼다. 사실 나는 이 톡토기를 집에서 종종 본다. 취미로(?) 지렁이를 사육하는데(음식물 쓰레기 줄이려고 시작했다), 사육통 안 습도가 너무 올라가면 깨알보다도 작은, 동글동글하고 하얀 것들이 흙 표면으로 바글바글 올라와 있곤 한다. 처음엔 이게 뭔가 했는데, 검색해보니 아무래도 톡토기라는 것 같다. 확실히 알아보는 방법도 있다.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렸을 때 톡 하고 튀어 오르면 톡토기가 맞다고 한다. 꽁지에 스프링 같은 기관이 있어서 튄다던가. 이름도 그래서 톡토기다. 만약 안 튀고 느릿느릿 기어다니면 응애일 수도 있고.. 어쨌든 그 작은 친구들이, 네이처에 논문으로 실렸다는 그 4억 5천만 년짜리 거래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뭐, 나는 논문이 어쨌든 상관 없이 '습도 너무 높네, 뚜껑 열어놓고 흙 좀 뒤집어 줘야겠다' 정도로 그만이지만.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가 비 오는 날 맡고서 '아 좋다' 하는 그 냄새는, 사실 흙 속 박테리아가 '얘들아 포자 좀 옮겨줘' 하고 톡토기한테 띄우는 배달앱 푸시 알림 같은 거였다. 우리는 거기 초대받은 적이 없다. 그냥 옆에서 그 알림을 엿듣고 혼자 낭만에 젖는, 말하자면 남의 단톡방 알림 소리에 설레는 손님인 거다.

 

같은 냄새인데, 누구는 도망치고 누구는 달려온다.

 

더 웃긴 건 같은 냄새를 두고 반응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초파리는 지오스민을 끔찍이 싫어한다. 전용 후각 회로까지 따로 둬서 이 냄새가 나면 '상한 음식이다' 하고 도망친다. 톡토기는 신나서 달려온다. 그리고 인간은? 좋다고 향수까지 만들어 보려고 한다. 같은 분자 하나를 두고 누구는 도망가고, 누구는 달려오고, 누구는 병에 담으려 한다니. 냄새라는 게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라 철저히 '받는 쪽 사정'이라는 게 이렇게 드러난다.

 

어쨌든, 향수로는 못 담더라

자, 그래서, 그 냄새가 그렇게 기분 좋으면 향수로 만들어도 되지 않나 싶은데, 이게 잘 안 된다고 한다. 지오스민만 딱 뽑아내면 생각보다 밋밋하고, 페트리코어 특유의 그 입체감이 안 산다. 수만 가지 향료를 다루는 향수 산업도 비 냄새 하나를 제대로 재현 못 하고 있다. 다만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어서, 인도에서는 1960년대부터 우타르프라데시 지방에서 마른 흙에 비가 닿는 향을 증류해 '미티 아타르(mitti attar)'라는 향수를 만들어 왔다고 한다. 흙을 구워서 그 향을 기름에 옮겨 담는 방식이라는데, 어찌 보면 가장 정직하게 비 냄새를 병에 담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지오스민은 흙에만 있는 게 아니다. 비트(사탕무)나 순무에서 나는 그 흙맛, 가끔 생수나 와인에서 느껴지는 흙내, 그게 다 지오스민이다. 그리고 하나 더. 민물고기에서 나는 그 특유의 흙냄새도 바로 이 지오스민이다.

 

내 취미 중 하나가 낚시인데, 나는 주로 바다낚시를 한다. 이유가 좀 단순하다. 민물고기는 잡아도 그 특유의 흙내 때문에 먹기가 영 내키질 않아서다. 회로 떠도, 매운탕을 끓여도 어딘가 흐릿하게 흙냄새가 깔린다. 그래서 회나 탕으로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바다 생선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울었다. 그냥 '민물고기는 비린내가 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찾아보고 알았다. 그게 비린내가 아니라 지오스민, 그러니까 페트리코어를 만드는 바로 그 흙냄새 분자였던 거다.

 

원리도 깔끔하게 맞아떨어진다. 물속 방선균이나 남세균이 지오스민을 뿜으면, 물고기가 아가미로 그걸 흡수해서 지방 조직에 차곡차곡 쌓는다. 심지어 물속 농도의 100배 가까이 농축되기도 한단다. 그러니 물이 탁하거나 미생물이 많은 환경에서 자란 민물고기일수록 흙내가 진할 수밖에. 양식장에서는 이게 큰 골칫거리라, 출하 전에 깨끗한 물에 며칠씩 가둬 흙내를 빼내는 '해감' 비슷한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결국 내가 막연히 피해온 그 냄새가, 이 글 앞부분에서 비 냄새를 만든다고 했던 그 박테리아 집안의 작품이었던 거다. 비 올 때 코로 기분좋게 맡던 분자를, 나는 그동안 입으로는 피해 다니고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이 또한, 음식에서 흙냄새가 난다는 것은 곧 음식이 상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에, 이렇게 진화해 온 것일지 모른다.

 

내가 바다낚시를 하는 이유는 생선을 잡아서 회를 먹기 위해서다. 민물고기는 지오스민 때문에 회로 먹기는 좀.. 물론 디스토마 문제도 있지만..

 

우리가 비 냄새는 좋아하면서 물에서, 또 민물고기에서 흙맛 나면 질색하는 거.. 같은 분자인데도. 역시 냄새는 받는 쪽 사정이고, 같은 분자라도 어디서 만나느냐에 따라 낭만이 되기도 하고 비린내 누명을 쓰기도 하는 것. 흥미롭지 않은가.

 

정리하면

낭만의 정체를 캐고 보니 좀 김이 새기도 한다. 우리가 비 오는 날 창문 앞에서 '아 이 냄새 너무 좋다' 하는 그 순간은, 알고 보면 흙 속 박테리아가 자식 퍼뜨리려고 곤충을 부르는 광고였고, 우리는 그 광고에 잘못 반응하는 엉뚱한 수신자였다.

 

그런데 그게 4억 5천만 년 동안 박테리아와 곤충이 주고받아 온 대화였고, 우리 코는 어쩌다 그 대화까지 엿들을 만큼 예민하게 진화했다는 이야기.. 심지어 상어가 피냄새 감지하는 것과 비교할 정도로 민감하게 진화했다는 부분이 몹시 흥미로웠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는 비 냄새에 민감한가? 사실 우리가 지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없다. 진화설도 결국은 가설일 뿐이다. 이것을 증명해 낼 실험을, 도대체 어떻게 설계하겠는가. ㅎㅎ

 

어쨌든 이번 출근길에도, 그리고 곧 다가올 장마에도 비에는 여전히 아무 냄새도 없을 것이다. 냄새는 늘 땅에서 올라왔다. 그러니 '비 냄새'라는 말은 앞으로도 안 고쳐지겠지만, 적어도 이제 그게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는 알았다.

 


글 닫기 전에..

그래서 빗방울 자체에는 진짜 냄새가 없다고?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빗물은 증류수에 가깝다. 우리가 맡는 건 비가 흙, 식물, 공기에서 끌어내 퍼뜨리는 냄새지 빗물 자체의 냄새가 아니다.

 

비 냄새가 유독 좋게 느껴지는 게 정상인가?

지극히 정상이다. 오히려 인간이 지오스민에 비정상적으로 예민한 쪽에 가깝다. 물을 찾던 조상의 흔적이라는 가설도 있고. 좋게 느껴지는 게 기본값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혹시 비 냄새가 어떤 추억을 불러오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그 추억이 좋았던 추억이라면.. 비 냄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냄새가 불러오는 추억에 대해 궁금하다면 아래의 글을 참고 바란다.)

2026.06.20 - [인지, 심리] - 냄새 하나에 갑자기 군대가 떠오른 이유 - 후각과 기억, 프루스트 현상 이야기

 

냄새 하나에 갑자기 군대가 떠오른 이유 - 후각과 기억, 프루스트 현상 이야기

특정 냄새를 맡으면 갑자기 옛날 기억이 확 떠오르는 이유, 바로 '프루스트 현상'이다. 후각만 시상을 거치지 않고 감정과 기억의 뇌 영역에 곧장 닿는 까닭, 그리고 아침 출근길 담배 냄새에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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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폭우보다 가랑비에서 냄새가 더 날까?

빗방울이 천천히 떨어져야 흙 속 공기 방울을 가뒀다가 에어로졸로 터뜨리는 과정이 잘 일어난다. 폭우는 너무 세서 그 과정을 뭉개버린다. 그래서 가랑비 첫 몇 분이 비 냄새는 가장 진하다.

 

도시 비 냄새랑 시골 비 냄새가 다르다던데?

기분 탓만은 아닐거다. 지오스민을 만드는 박테리아는 흙에 많다.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는 그 흙이 적으니 냄새도 옅고, 대신 아스팔트나 먼지에서 올라오는 다른 냄새가 섞인다. 마른 땅이 많은 건조한 곳일수록 비 첫 냄새가 더 강하게 터지고, 같은 도시에서도 공원이나 화단 같이 흙이 있는 곳에서는 냄새가 많이 난다.

 

민물고기에서 나는 흙냄새도 이것과 동일한가?

맞다. 그 흙내가 바로 지오스민(..과 사촌격인 2-MIB?)이다. 물속 박테리아가 만든 걸 물고기가 아가미로 흡수해 지방에 쌓는다. 그래서 깨끗한 물에서 자랐는지, 지방이 많은 부위인지에 따라 흙내 정도가 다르다. 우리가 비 냄새로는 좋아하고 음식으로는 싫어하는, 같은 분자다.

 

지오스민이 몸에 해롭진 않나?

사실 지오스민 자체는 무해하다. 비트나 생수에서 흙맛으로 만나는 그 분자다. 해로웠으면 우리가 흙맛 나는 물을 그렇게 많이 마시고도 멀쩡할 리가 없다. 다만 아마도 땅바닥에 떨어져 지오스민이 배어들 정도로 시간이 지난 음식은 상했을 확률이 높다..는 교훈이 우리 유전자에 박혀 있는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땅에 떨어진건 가급적 먹지 말라고, 입에서 느껴지는 흙냄새를 싫어하도록 진화해온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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