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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깨끗이 빨았는데 왜 빨래에서 쉰내가 날까. 건조기를 돌려도, 햇볕에 말려도
슬그머니 올라오는 빨래 냄새의 진짜 범인은 '모락셀라균'과 그 균이 만드는 냄새 물질이다.
쉰내가 나는 원리부터 장마철과 청바지가 유독 불리한 이유, 그리고 원리에 맞는 제거법까지 정리해 보았다.

오늘도 빨래를 한 바구니 돌렸는데, 또 그 바지다. 분명 다른 옷이랑 같이 빨았는데 유독 내 바지 한 벌에서만 쉰내가 슬그머니 올라온다. 어쩔 수 없이 창틀에 따로 걸어서 햇볕 좀 보라고 널어놓은 참이다.
사실 우리 집엔 이렇게 빨고 또 빨아도 쉰내가 가시지 않는 옷이 몇 벌 있는데, 가만 보면 공통점이 있다. 죄다 내 바지, 그중에서도 청바지 같은 진 계열이라는 것.
이게 은근히 난감하다. 수건이나 면 티셔츠야 펄펄 끓는 물에 삶아버리거나 건조기에 고온으로 한번 돌려버리면 웬만한 냄새는 정리가 되는데, 청바지는 삶을 수도 없고(쪼그라들거나 물이 쭉 빠진다) 건조기도 함부로 못 돌린다. 그러니 냄새나는 바지를 들고 '이걸 대체 어쩌나' 하며 서 있게 되는 거다.

.. 참고로 건조기에 돌려도 냄새가 영 별로인 옷이 몇 벌 더 있긴 한데, 이건.. 수치스러우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마침 장마가 시작됐다. 이 글은 2026년 6월 말부터 7월 초, 늦은 장마 들머리에 걸쳐 쓰고 있는데, 일 년 중 이 쉰내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철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작정하고 찾아봤다. 도대체 이 냄새의 정체는 뭐고, 왜 말려도 자꾸 되살아나는 걸까. 그리고 왜 하필 내 청바지는 매번 고이~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인가.
일단, 뻔한 오답부터 지워보자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다. '덜 말려서 그런가?' 그런데 이 가설은 금방 탈락이다. 내 바지는 바짝 마른 빨래에서도 코를 대면 쉰내가 났다. 어떤 빨래는 건조기에 돌려 보송보송해진 상태에서도 그 냄새가 올라온다. 이건 단순히 '물기가 남아서'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럼 '제대로 안 빨아서?' 아니, 이 냄새가 나는 옷들은 방금 깨끗하게 빨아서 꺼낸 상태에서도 바로 쉰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빨래를 안 해서가 아니라, 빨래를 하는데도 냄새가 남는다는 게 이 문제의 핵심이다. 뭔가 단순한 '청결'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냄새 제거 캡슐도 넣어보고, 섬유 유연제도 많이 넣어보고 했지만 역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 진짜 범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진짜 범인을 찾아 들어가 봤더니, 결국 '균' 이야기가 나온다.
쉰내의 진짜 범인, 모락셀라균
찾아보니 빨래 쉰내의 주범으로 가장 많이 지목되는 건 '모락셀라 오슬로엔시스(Moraxella osloensis)'라는 세균이라고 한다. 이름이 좀 거창한데, 그냥 '모락셀라균'이라고 부르자.
이 모락셀라균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우리가 옷을 입고 하루를 보내면 땀과 피지, 기름기 같은 유기물이 옷에 남는다. 모락셀라균은 이걸 먹고, 그 대신 '4-메틸-3-헥센산(4-methyl-3-hexenoic acid)'이라는 물질을 내놓는다고 한다. 발음도 안 되는 이 물질이 바로 우리가 맡는 그 시큼하고 꿉꿉한 쉰내의 정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옷에 남은 땀과 기름이 균에게는 먹이가 되고, 그 균이 먹이를 먹고 싼.. 아니, 만들어 낸 노폐물이 우리 코를 찌르는 냄새 물질이라는 거다. 사람은 그냥 별생각 없이 입는 옷이지만, 균 입장에선 잘 차려진 뷔페였던 셈이다.
즉 냄새의 정체는 '균이 만든 화학물질'이라는 거다. 이걸 알아야 그다음이 풀린다.
그런데 왜 말려도, 삶아도 안 사라지나
자, 균이 문제면 말려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햇볕에 쨍하게 말리거나 건조기에 뜨겁게 돌리면?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상식이 한 번 배신을 당한다.
찾아본 바로는, 모락셀라균은 생각보다 끈질겨서 햇볕에 말리거나 건조기를 돌리는 정도로는 쉽게 박멸되지 않는다고 한다. 마른 상태에서 활동을 잠시 멈추고 버티다가, 옷이 다시 땀이나 습기로 젖으면 슬그머니 되살아나 또 냄새 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거다. 좀비 같은 녀석들이다.
게다가 더 결정적인 건, 설령 균을 어느 정도 잡았다 해도 '이미 만들어진 냄새 물질'은 그대로 옷감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범인을 잡는 것과, 범인이 어질러 놓은 흔적을 치우는 건 별개의 일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냥 말리기만 해서는, 균은 버티고 냄새 물질은 남아서, 다시 입고 땀 흘리는 순간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다.
장마철과 실내건조가 유독 고약한 이유

그러면 평소엔 괜찮던 옷이 왜 장마철만 되면 더 심하게 쉰내를 풍길까. 답은 '마르는 데 걸리는 시간'에 있다.
빨래가 빠르게 바짝 마르면, 균이 활동할 시간 자체가 짧다. 그런데 장마철처럼 습도가 높고 햇볕도 없어서 빨래가 눅눅하게 오래 걸려 있으면, 그 어중간하게 젖은 상태(반쯤 마른 상태)가 길게 이어진다. 균 입장에선 이 미지근하고 축축한 시간이 더없이 좋은 번식 환경, 말하자면 '온실'이 되는 거다. 그래서 실내건조한 빨래에서 나는 그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따로 있는 거고.
반대로 쨍한 날 밖에 널면 좀 낫다고 느끼는 건, 자외선이 약간의 살균을 해주는 데다 무엇보다 빨리 말라서 균이 일할 틈을 안 주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얼마나 빨리 완전히 마르느냐'다.
그래서.. 왜 하필 내 청바지인가
이쯤 되면 내 청바지가 왜 단골 용의자인지도 설명이 된다. 청바지 같은 두꺼운 데님은 거의 모든 조건이 균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
일단 원단이 두껍고 촘촘해서 잘 안 마른다. 특히 주머니 안감이 겹쳐 있는 곳은 정말..하..
안 마른다는 건 곧 '반쯤 젖은 시간'이 길다는 뜻이고, 위에서 말한 그 온실 상태가 오래 간다는 얘기다. 게다가 청바지는 보통 자주 빨지도 않고, 빨아도 색 빠질까 봐 찬물에 살살 빠는 경우가 많다. 미지근하지도 않은 찬물 세탁은 균을 떼어내기엔 영 약하다.
결정적으로, 가장 확실한 해결책인 '삶기'와 '고온 건조'를 청바지엔 쓸 수가 없다. 수축되고 물이 빠지니까. 잡을 무기가 가장 강력한데, 정작 그 무기를 못 쓰는 상대인 셈이다. 내 바지의 냄새만 매번 고약했던 게 결코 기분 탓이 아니었던 거다.
원리를 알았으니, 이제 냄새를 잡아보자
어쨌든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법도 이 '원리에 맞게' 정리해 나가면 된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 균이 일할 시간을 안 주기. 둘, 이미 생긴 산성 냄새 물질을 중화시키기.

- 무조건 빨리, 완전히 말린다.
가장 기본이자 가장 중요하다. 빨래는 다 되면 세탁기 안에 방치하지 말고 바로 꺼내 건조기를 돌리거나 널어 놓는다. 젖은 채로 통 안에 오래 두는 게 최악이다. 장마철엔 실내에서라도 빨래 간격을 충분히 벌려 널고, 선풍기나 제습기를 같이 돌려서 마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인다. '반쯤 젖은 시간'을 짧게 만드는 게 포인트다. - 산성 냄새는 알칼리로 중화한다.
냄새의 정체인 그 물질이 산성(acid)이라고 했다. 그러면 반대 성질인 알칼리로 중화해 주면 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과탄산소다'나 '탄산소다(세탁소다)'다. 40~50도쯤 되는 미지근한 물에 과탄산소다를 풀고 30분 이상 담가두었다가 빨면, 단순히 향으로 냄새를 덮는 게 아니라 냄새 물질 자체를 중화시켜 없애는 쪽에 가깝다고 한다.

향으로 덮지 말고, '산성' 냄새를 '알칼리'로 중화해보자. 청바지는 뒤집어서.
다만 청바지는 여기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과탄산소다는 표백 성분이 있어서 진한 색 청바지에 잘못 쓰면 색이 얼룩덜룩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어두운 색 옷에는 표백력이 덜한 탄산소다 쪽이 안전하고, 청바지는 뒤집어서 빠는 게 색 보호에 좋다. 60도 넘는 뜨거운 물은 균 잡기엔 좋지만 옷감이 상할 수 있으니, 청바지엔 미지근한 물 + 소다 담금이 현실적인 타협점이다. - 그리고 세탁기 자체를 의심한다. 정작 균의 본거지가 세탁기 안일 수 있다. 늘 축축한 세탁조 안쪽과 고무 패킹은 균과 곰팡이가 살기 딱 좋은 곳이다. 한 달에 한 번쯤은 세탁조 클리너로 통세척을 해주는 게, 멀쩡한 빨래에 균을 다시 묻히지 않는 길이다. 참고로 '식초를 넣으면 된다'는 이야기도 많이 보이는데, 원리상으로 보면 좀 갸웃하다. 산성 냄새를 잡겠다고 또 다른 산성인 식초를 넣는 셈이라, 살균 효과를 조금 기대할 순 있어도 냄새 물질 중화에는 알칼리만 못하다는 의견이 많다. 향으로 잠깐 덮는 정도라는 거다.
결국 내 청바지의 쉰내는 게으름의 증거라기보다(..아니라고 해두자), 균이 좋아하는 조건이 우연히 다 겹친 결과였던 셈이다. 안 마른 채 방치된 시간, 물빠짐을 피하기 위한 찬물 세탁,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닌 삶기와 건조기까지.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창틀에 널어둔 바지를 보며 드는 수치심이 조금 합리화되는 느낌이다. 내 잘못이 아니고, 그냥 균이 부지런했던 거라고.
그러고보면 사실, 냄새의 정체를 파고들어 보면 늘 비슷한 그림이 나오는 것 같다. 예전에 비 냄새.. 그러니까 비 올 때 나는 그 흙냄새가 어디서 오나 궁금해서 캐본 적이 있는데, 그때 범인도 결국 흙 속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지오스민'이라는 물질이었다. 빨래 쉰내든 비 냄새든, 코를 찌르는 그 정체가 결국 '미생물이 만든 특정 분자'라는 점에서 둘은 똑 닮았다. 좋은 냄새든 싫은 냄새든, 따라가 보면 끝에 미생물이 앉아 있는 셈이다.
2026.06.06 - [자연, 과학] - 비 냄새는 사실 빗방울 냄새가 아니다? - 페트리코어와 지오스민 이야기
비 냄새는 사실 빗방울 냄새가 아니다? - 페트리코어와 지오스민 이야기
어제 출근길에는 우산도 안 챙겼는데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진다 싶더니만, 훅 하고 그 냄새가 끼쳤다. 비가 아직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공기가 먼저 '이제부터 비 온다?'고 알려주는 그 냄새.
lostuni.tistory.com
글 닫기 전에..
빨래를 깨끗이 빨았는데도 쉰내가 나는 이유는?
냄새의 정체가 '균이 만든 화학물질'이라서다. 빠는 행위로 균을 다 떼어내지 못하면, 옷에 남은 균이 다시 땀과 습기를 만나 냄새 물질을 또 만들어 낸다. 청결의 문제라기보다 균과 그 부산물의 문제에 가깝다.
건조기에 돌렸는데도 꿉꿉하다?
모락셀라균은 건조 정도로는 잘 안 죽고, 무엇보다 이미 만들어진 냄새 물질은 열로 말려도 남는다. 건조는 균의 활동을 잠시 멈출 뿐 박멸도 냄새 제거도 아니라고 보면 된다.
청바지 쉰내는 어떻게 없애나?
미지근한 물(40~50도)에 탄산소다나 산소계 표백제를 풀어 30분 이상 담갔다가 빠는 방법이 원리상 잘 맞는다. 단 진한 색은 색 빠짐을 주의해 탄산소다 위주로, 옷은 뒤집어서. 그리고 빨고 나면 최대한 빨리 완전히 말리는 게 핵심이다.
식초를 넣으면 될까?
향을 덮는 효과 정도는 있을 수 있지만, 산성 냄새 물질을 중화하는 데는 알칼리(소다)가 원리상 더 맞다. 식초보다 탄산소다 쪽을 권하는 의견이 많다. 그리고.. 식초 냄새 자체도 옷에서 나는게 썩 유쾌하지는 않다..
장마철에 냄새가 유독 심한 이유는?
빨래가 눅눅하게 오래 걸려 있는 시간, 즉 '반쯤 마른 상태'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균에겐 번식하기 좋은 온실이 된다. 그래서 선풍기, 제습기로 빨리 말리는 게 장마철엔 특히 효과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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