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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머리에서 계속 맴도는 '귀벌레' 현상은 왜 생길까.

90%가 일주일에 한 번은 겪는다는 INMI(Involuntary Musical Imagery),

이어웜의 정의부터, 유독 잘 박히는 노래의 특징, 수능금지곡 이야기,

그리고 껌 씹기처럼 실제로 효과가 보고된 떨쳐내는 법까지 정리해 보았다.


분명 스마트폰 알람은 껐는데, 머릿속에서 노래가 안 꺼진다.

 

요즘 아침 알람을 스포티파이 인기곡 차트로 설정해 놓고 이용중이다. 매일 바뀌는 차트 인기곡이 알람으로 울리니까, 말하자면 강제로 요즘 노래를 듣게 되는 셈이다. 나름 신선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부작용이 하나 있었다.

 

요 며칠은 한로로의 '입춘'이 알람으로 깔렸다. 그리고 그 며칠간은 하루 종일, 정말 하루 종일 그 노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회의 중에도, 점심 먹으면서도, 화장실에서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 며칠은 악뮤의 '소문의 낙원'이 같은 짓을 했다. 괴로워하면서 종일 흥얼거리는 게 내 일과가 된 거다.

인기곡이 랜덤하게 알람으로 나오는건 알람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을 막아줘서 도움이 되긴 했다. 하지만..

 

그런데 어제부터는 에스파의 '레모네이드'가 알람으로 나왔는데, 이 노래는 신기하게도 귀에서 맴돌지 않는다. 살았다 싶었다. 같은 알람, 같은 아침, 같은 비몽사몽인데 어떤 노래는 종일 나를 붙잡고 어떤 노래는 깔끔하게 놓아준다. 대체 이 차이가 뭘까.

 

뻔한 답부터 지워보자. 한로로의 '입춘'을 더 좋아해서? 아닌데. 솔직히 나는 그 노래를 끝까지 알지도 못한다. 후렴 한 토막만 빙빙 돌 뿐이다. '많이 들어서?' 그것도 아니다. 셋 다 알람으로 며칠씩 들은 건 똑같으니까. 좋아하는 정도도, 들은 횟수도 비슷한데 결과는 다르다. 그래서 좀 찾아봤다. 어차피 흥얼거리는 김에 ㅎㅎ.

 

이게 그 '귀벌레'라는 거였다

이 현상에는 정식으로 이름까지 붙어 있었다. 귀벌레. 독일어 'Ohrwurm'(귀+벌레)을 그대로 옮긴 말이고, 영어로는 이어웜(earworm), 학술적으로는 INMI(Involuntary Musical Imagery), 우리말로 풀면 '비자발적 음악 심상'.. 정도가 된다. 앗, 잠깐.. 한자로 이루어진 명사가 덕지덕지 붙은 저게 우리말이라고 해도 되는거 맞나? 뭐, 북한처럼 억지로 순우리말 쓸건 또 아니지만서도.. 그냥 귀벌레라고 하면 그게 우리말 아냐?

 

뭐, 어쨌든. 이 귀벌레라는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음악이 저절로 재생되고 반복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처음엔 '나만 이러나'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90% 정도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귀벌레를 겪는다고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겪는, 아주 흔한 현상이라는 거다. 좀 위안이 됐다. 나만 하루종일 노래 한 곡에 납치당하는 게 아니었어.

 

독일어로 그냥 '귀에 사는 벌레'를 의미하는 단어를 현상에 이름이라고 가져다 붙였다. 작명 센스 ㅎㅎ

 

참고로 내 개인적인 음악 취향은 락이다. 하지만 정작 머릿속을 점령하는 건 늘 차트 상위권 아이돌 곡이나 발라드다. 내 취향과 무관하게 박힌다는 게 이 현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귀벌레는 내가 고르는 게 아니라 그냥 당하는 거니까.

 

왜 하필 머리에 박히나 - 트리거?

연구자들이 정리한 바로는, 귀벌레가 시작되는 데는 몇 가지 흔한 방아쇠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 그 노래를 들었거나, 같은 곡에 반복적으로 노출됐거나, 특정 기분 상태이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아니면 그냥 멍하니 딴생각에 빠져 있을 때(mind-wandering). 이럴 때 기억 속에 있던 멜로디가 슬그머니 의식 위로 올라온다는 거다.

 

여기까지 읽고 좀 허탈해졌다. 가만 보니 내 아침 알람이 이 조건을 거의 다 충족한다. 매일 같은 노래에 반복 노출되고(알람), 막 깨서 머리가 멍하고(전형적인 mind-wandering 상태), 출근하기 싫은 기분까지. 귀벌레가 자라기에 이보다 완벽한 온실이 없다. 내가 트리거를 손수 세팅해 놓고 매일 아침 버튼을 누르고 있던 셈이다. ㅋㅋㅋ

 

반복 노출 + 멍한 아침 + 출근하기 싫은 기분. 귀벌레 자라기에 딱 좋은, 온실? 사육장?이 따로 없다.

 

그래서, 왜 '입춘'은 귀에 박히고 '레모네이드'에는 멀쩡했을까

여기서부터가 내가 진짜 궁금했던 부분이다. 트리거가 똑같다면, 노래 자체에 뭔가 차이가 있는 거 아닐까?

 

영국 더럼대의 켈리 야쿠보프스키 연구팀이 2017년에 바로 이걸 파고든 연구가 있다. 사람들이 '귀벌레가 됐다'고 자주 꼽은 곡 100개와, 한 번도 안 꼽힌 곡 100개를 멜로디 특징으로 비교한 거다.

 

결과를 거칠게 요약하면, 잘 박히는 노래는 대체로

  1. 템포가 빠른 편이고,
  2. 멜로디의 전체 윤곽은 흔하고 따라 부르기 쉬운데,
  3. 그 안에 어딘가 의외의 도약이나 특이한 구간이 하나씩 끼어 있다고 한다.

쉽게 흥얼거릴 만큼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한 군데가 '어?' 하고 걸리는 노래. 그 익숙함과 의외성의 조합이 뇌에 자꾸 재생 버튼을 누르게 만든다는 얘기다.

 

게다가 차트에서 성공했거나 최근에 많이 노출된 곡일수록 귀벌레로 보고되는 빈도가 높았다고 한다. 음.. 내 알람이 인기곡 차트라는 걸 떠올리면, 이건 거의 귀벌레 제조기를 머리맡에 둔 격이다.

 

익숙한데 한 군데가 '어?' 하고 걸리는 노래가 잘 박힌다고 한다.

 

물론 이걸 가지고 '입춘은 의외의 도약이 있고 레모네이드는 없다' 같은 단정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건 그냥 나에게 그렇다는 이야기지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거라는 이야긴 아니다. 뭐, 에스파 노래가 따라 부르기 난해한 건 맞는것 같긴 한데.. 어쨌든, 같은 조건에서 어떤 곡은 귀에 박혀 하루종일 맴돌고 어떤 곡은 안 박힌다면, 그 차이의 상당 부분은 노래 자체의 생김새에 있다는 것.

 

음악이 어떻게 우리 머릿속에서 감정과 기억을 건드리는지는 예전에 [장조와 단조 이야기]에서도 한 번 다뤘는데, 귀벌레는 그 음악이 아예 눌러앉아 버린 극단적인 경우인 셈이다.

 

2026.06.11 - [인지, 심리] - 단조 노래는 왜 슬프게 들릴까 -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만? 장조와 단조 이야기

 

단조 노래는 왜 슬프게 들릴까 -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만? 장조와 단조 이야기

가끔씩 땡기는 가슴 아리게 애잔한 슬픈 노래. 그런데.. 슬픈 노래가 슬프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슬픈 분위기의 노래는 단조 구성이라던데, 단조 노래를가 슬프게 느끼는 것은 자라면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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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는 모르는, 애매하게 아는 노래가 더 잘 박히는 이유

자, 여기서 재미있는 대목이 하나 있다. 나는 입춘을 곡의 끝까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게 더 잘 박히는 이유일 수 있다고 한다.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게 있다. 사람은 끝낸 일보다 끝내지 못한 일을 더 오래, 더 또렷하게 기억한다는 심리 현상이다. 후렴만 알고 뒷부분을 모르는 노래는 뇌 입장에서 '미완성 과제'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자꾸 그 토막을 재생하면서 어떻게든 마저 부르려고 한다는 거다. 끝맺지 못한 노래가 끝맺지 못한 채로 빙빙 도는 것. 나에게는 한로로의 입춘이 딱 이 꼴이었다.

 

뇌는 끝맺지 못한 노래를 가장 못 견딘다.

 

그럼 끝까지 들어서 '완성'시키면 없어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노래를 찾아 끝까지 들어봤다. 결과는.. 더 박혔다. 들었으니까 또 최근 노출이 생기고, 그래서 다시 맴돌고. 악순환이었다. 알고 보니 이건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나온다고 한다. 노래를 끝까지 들려준 그룹과 중간에 끊은 그룹을 비교했더니 이후 귀벌레가 생기는 정도에 별 차이가 없었다는 후속 연구가 있다. '완성하면 사라진다'는 직관이 늘 맞지는 않는다는 거다. 내가 찾아 들을수록 더 시달린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 그런데 노래는 정말 좋았다. 뭐..

 

어쨌든, 이 자이가르닉 효과는 사실 음악에 대해서만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우리가 드리마를 보다보면, 다음이 궁금해지는 시점에 다음화에 계속된다며 절묘하게 회차가 끝나버리고는 애매한 한두컷만 크레딧과 함께 뿌려주곤 하는걸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이렇게 미완성을 못 견디는 우리의 뇌를 자극하는 일종의 마케팅이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니 이 주제로도 글 한 편 뚝딱이겠는걸?..

 

아무튼, 그래서 귀벌레는 도대체 어떻게 떨쳐내나

본론이다. 이게 내가 이 글을 쓴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종일 흥얼거리는 형벌에서 벗어나는 법이 있을까. 찾아보니 몇 가지가 연구로 보고돼 있었다.

 

첫째, 껌을 씹는다. 좀 어이없게 들리는데, 2015년 한 연구에서 껌을 씹게 했더니 머릿속에서 노래를 떠올리는 빈도가 줄었다고 한다.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리는 데도 '입으로 소리 내는' 동작을 계획하는 뇌 영역이 관여하는데, 껌을 씹으면 그 입의 운동을 다른 데 써버려서 속으로 부르는 걸 방해한다는 설명이다. 그럴듯하다.

 

둘째, 다른 일에 제대로 몰입한다. 너무 쉬우면 딴생각(귀벌레가 좋아하는 그 멍한 상태)이 끼어들고, 너무 어려우면 포기하게 되니, 적당히 머리를 쓰는 일.. 예를들면 스도쿠나 퍼즐같은, 집중이 필요한 작업 정도가 좋다고 한다.

 

셋째, 이른바 '치료곡(cure tune)'으로 덮는다. 다른 노래, 그것도 끝이 분명한 노래를 한 곡 끝까지 부르거나 들어서 머릿속 재생목록을 갈아끼우는 방법이다. 다만 이건 잘못하면 새 곡이 또 박히는 부작용이 있으니 주의. 불 끄려다 옆집에 옮겨붙이는 격이 될 수 있다.

 

껌 하나 씹는 것이 명상보다 나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런데 미리 한 가지 빠져나갈 구멍을 하나 덧붙이자면, 이 모든 게 '확실한 치료법'은 아니다. 애초에 우리 뇌가 왜 이런 쓸데없어 보이는 짓을 하는지부터가 아직 깔끔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기억을 정리하고 다지는 과정의 부산물이라는 가설도 있고, 그냥 뇌가 심심할 때 익숙한 패턴을 돌리는 거라는 해석도 있는데, 어느 쪽도 '이거다' 하고 증명된 건 아닌 모양이다. 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다 측정하겠나 싶기도 하고.

 

정리하면

귀벌레는 뇌의 고장이 아니라 거의 모두가 겪는 흔한 현상이고, 잘 박히는 노래에는 나름의 생김새(빠른 템포, 익숙하면서 의외의 한 끗)가 있으며, 끝까지 모르는 노래일수록 미완성 과제처럼 더 들러붙는다. 그리고 떨쳐내는 데는 껌 씹기, 다른 일에 몰입하기, 다른 노래로 덮기 정도가 그나마 보고된 방법이다.

 

결론적으로 범인은.. 매일 아침 인기곡 차트를 알람으로 깔아둔 나 자신이었다. 트리거를 손수 세팅해 두고 종일 시달린 거다. 다음에 또 어떤 곡이 머릿속에 눌러앉으면, 이번엔 배운 대로 껌부터 한 통 사 와야겠다. 그래도 안 되면 알람을 다시 무미건조한 기본음으로 돌리든가. 아니면 그냥 이러고 살든가. 생각해보면 뭐, 딱히 이게 사는데 방해되는 것도 아니고..

 

오늘 아침 알람은 에스파의 레모네이드였다. 다행히, 지금 이 글을 다 쓸 때까지 머릿속은 조용하다.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글 닫기 전에..

노래가 머리에서 안 떠나는 거, 병인가?

아니다. 귀벌레(INMI)는 인류의 90%가량이 일주일에 한 번은 겪는 아주 흔한 현상이고, 그 자체로는 문제 될 게 없다. 다만 일상이 안 될 만큼 음악 환청이 심하거나 통제가 안 된다면 그건 다른 문제일 수 있으니 전문가 상담을 권한다. 평범하게 흥얼거리는 수준이라면, 그냥 인간이라는 증거입니다, 닝겐.

 

귀벌레는 어떻게 하면 빨리 없어질까?

가장 만만한 건 껌 씹기다. 입의 운동을 다른 데 써서 속으로 흥얼거리는 걸 방해한다는 원리. 그 외에 스도쿠 같은 적당히 머리 쓰는 일에 몰입하기, 끝이 분명한 다른 노래로 덮기 등이 보고돼 있다. 단, '그 노래를 끝까지 들으면 없어진다'는 직관은 늘 맞지는 않으니 주의.

 

수능금지곡이 그래서 무서운 거였나?

그렇다. 후렴이 쉽고 중독성 있는 곡, 즉 귀벌레가 되기 딱 좋은 노래들이 수능금지곡으로 꼽힌다. 시험처럼 긴장한 상태에서 멍하게 딴생각이 끼어들기 쉬운 조건이라 더 잘 박힌다. 시험 직전에 그런 노래를 듣는 건.. 스스로 함정을 파는 일이다.

 

나만 유독 심한 것 같은데..?

사람마다 빈도 차이는 있다. 음악을 자주 듣는 사람, 평소 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자주 겪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아침 알람을 인기곡 차트로 해놓은 누군가처럼 말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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