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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 1만원, 카르멘 서곡부터 타자기 협주곡, 위풍당당 행진곡, 앙코르 윌리엄 텔까지. 아는 곡만 골라 담은 경기필하모닉 '축제의 서곡'을 본 후기. 클래식 문턱이 이렇게 낮아도 되나.. 감사합니다.

전석 1만원짜리 오케스트라를 보러 갔다.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경기필하모닉의 '축제의 서곡'. 표값이 저렴하다 싶었는데, 프로그램을 보니 그 의도가 짐작이 갔다. 아는 곡이, 정말 많이 나왔다.

보통 오케스트라 공연이라고 하면 교향곡 한두 곡을 진득하게 앉아 듣는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이 공연은 정반대였다. 카르멘 서곡, 도나우강, 위풍당당 행진곡 같은, 클래식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멜로디는 흥얼거릴 수 있는 곡들을 짧게 짧게 이어 붙였다. '축제의 서곡'이라는 제목 그대로, 문턱을 있는 힘껏 낮춘 편성이었다.

1부, 아는 곡의 연속
첫 곡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서곡. 워낙 유명한 곡이고 길이도 짧다. 지휘자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거의 곧바로 연주가 시작됐다. 뜸 들이고, 뭐 그런 거 없이 바로. 공연 전체의 성격을 첫 곡부터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곡은 이날의 별미였다. 앤더슨의 '타자기 협주곡(The Typewriter)'. 무대에는 시작 전부터 타자기가 세팅되어 있었는데(사진을 보면 지휘대 옆에 작은 책상과 타자기가 하나 놓여 있다), 이 타자기와 탁상용 벨 같은 걸 타악기로 쓴다. 착착착착 하는 타자 소리, 그리고 다 친 종이를 처음 위치로 되돌릴 때 나는 촤악 하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연주에 딱딱 맞춰 리듬을 탄다. 경쾌하고, 무엇보다 채미있었다. 가끔 사무실에서 타자를 칠 때, 가끔은 나도 듣고 있던 음악에 맞춰 타자를 치곤 한다. 너무 티나게 치면 눈치 보이니까, 살짝 엇박도 일부러 넣으면서. 나름대로는 일을 어떻게든 덜 지루하게 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데, 이 곡은 그걸 아예 음악의 주제로 잡아버렸다. 컨셉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드는 곡이다. ㅎㅎ. 그리고 이 타자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몸짓과 표정 연기까지가 곡의 일부라는 인상도 받았다. 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었다.
세 번째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원래도 유명한 왈츠지만, 최근,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삽입되면서 더 유명해진게 아닐까 싶은 곡이다. 게임을 하러 이동할 때 흐르던 그 음악.
네 번째, 앤더슨의 '나팔수의 휴일(Bugler's Holiday)'. 트럼펫 수석, 차석, 상임 세 명이 앞으로 나와 메인이 된다. 나팔수의 휴일이라면서 정작 제일 열심히 나팔을 부는 나팔수들이 아닌가 싶어 혼자 웃었다. 트럼펫 셋이 만드는 화음이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1부 마지막은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서곡. 이 곡 중간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내가 중고등학생 때 합창 대회 나가느라 연습했던 곡 중 하나다. 중학생 때였는지 고등학생 때였는지는 이제 기억이 잘 안 난다. 어쨌든 그 멜로디가 나오는 순간 몹시 반가웠다. 속으로 더듬더듬, 기억을 따라 가사를 되뇌어 보기도 했다. 무대 위 곡인데 잠깐 내 학창시절, 교실로 끌려갔다 온 기분이었다.
인터미션, 그리고 2부, 계속 아는 곡
2부 첫 곡은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곡이다. 영미권에서는 졸업식 단골이고, 내 기억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요거트 광고(닥터 캡슐이었나?)에 쓰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이래저래 여기저기 참 많이 쓰이는 곡이다. 영국에서는 거의 제2의 국가 대접을 받는다는 모양인데, 마침 영국 여행을 준비 중이라 이 곡이 평소와 좀 다르게 와닿았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역시 유명한 곡이고 영화에도 많이 쓰였다고 알고 있다. 빠르게 몰아치다가 박자가 갑자기 뚝 느려지는 구간, 한 음 한 음을 눌러 담듯 연주하는 구간이 있는데, 지휘자의 손짓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 소리로 들리는 순간들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앞의 헝가리 무곡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슬라브 특유의 우수라는 게 뭔지 콕 집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서정적인 곡이었다. 이공계 출신은 이럴 때 슬프다. 표현할 어휘가 부족하다. ㅎㅎ;
그리고 여기서부터 잠깐 딴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곡이 연주될 즈음, 앞자리에 앉은 초등학생 둘이 완전히 빌런이 되어 있었다. 한 아이는 2부 들어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너무 크게 쳐 댔고(귀가 아플 정도였다), 또 한 아이는 고개를 계속 휙휙 돌려대서 자꾸 시선이 그리로 갔다. 처음엔 박수 소리 큰 아이만 거슬렸는데, 그 박수 소리에 거슬린 두 번째 아이가 고개를 젓기 시작하는게.. 점점 동작이 커지더니만, 이내 한 곡이 연주되는 내내 머리를 휘적휘적.. 결국 둘 다 몹시 신경이 쓰이는 시점에 머리를 휘젓는 아이의 부모가 아이에게 주의를 주면서 다시 감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표값이 저렴하고 유명하고 대중적인 곡 위주로 편성한 공연이니, 당연하게도 아이를 데리고 오는 관객이 많은 공연이 된다. 그 자체는 몹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클래식을 이렇게 만나는 계기가 많아지게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이게 이 공연의 목적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더 많은 문화 체험의 기회와 음악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
다만 아이를 데려왔으면, 데려온 어른이 관람 매너도 같이 가르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아이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의 아이는 당연히 공연 관람 매너에 대해 모를거고, 박수를 그렇게 앞뒷사람 고막이 터져라고 치는 것은, 그래서 앞사람이 고개를 휘저을 정도로 짓궃게 치는것은 매너가 아니라고 제지하며, 연주가 진행 중일 때에는 뒷사람이 있으니 몸을 크게 움직이지 말자고 옆에서 짚어주는 건 결국 데려온 사람 몫이 아닐까..
어쨌든, 다음곡은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영화 '대부'에 삽입된 곡이다. 영화에서 이 곡이 흐르던 장면은, 적어도 내가 살면서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연기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알 파치노는 그래서 내가 생각했을 때 연기로 말하자면 정말 최고의 배우 중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던 그 장면이, 연주와 함께 머릿속에 재생되듯 떠오르면서, 그때 받았던 그 느낌을 연주가 다시 한번 불러다 주었다. 감동이었다.
2부 마지막은 잘 모르는 곡이었는데,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공' 중 '폴로베츠인의 춤'. 멜로디가 특이했다. 오케스트라 곡이 아니라 원래 오페라의 한 곡이었다는데, 이건 원작이 좀 궁금해졌다.

온몸으로 지휘하는 사람
곡 이야기 사이에 지휘자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날 지휘는 온몸으로 하는 스타일이었다. 소리의 완급, 어느 파트를 키우고 어느 파트를 눌러야 하는지가 음악적 소양이라곤 거의 없는 내 눈으로 봐도 다 보일 정도였다. 여기선 작게, 여기선 확 열고. 지휘가 이렇게 눈으로 읽히는구나 싶었다.
다만.. 악단이 그 지휘를 전부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지만, 지휘대로라면 작게 갔어야 할 것 같은 부분이 그냥 세게 나간 대목도 있었던 것 같고, 자잘한 실수 같은 것도 몇 번 들렸다.(아닐수도 있다. ㅎㅎ) 나야 뭐, 전문가가 아니니 당연히 내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느낌이 남았다는 것 정도는 적어둔다. 그러나 어쨌든, 충분히 감동적이고 좋았다. ㅎㅎ
앙코르, 그리고 둘째 아이의 웃음

앙코르 곡은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이었다. 그 유명한 빨간펜 광고 시그널. 사실 이 곡을 꼭 듣고 싶어 하던 둘째 아이가, 앙코르로 이 곡이 시작되자 웃음을 못 참더라. 재밌는건, 이 곡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빨간펜', '빨간펜' 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 ㅎㅎ 아니, 대체, 그 빨간펜 광고가 뭔데?

정리하자면, 이 공연은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 아이와 함께 온 가족, 오케스트라가 처음인 사람에게 권할 만한 축제형 공연이었다. 전석 1만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세게 파고드는 명연을 기대하고 가면 자잘한 아쉬움이 남을 수 있지만, 아는 곡을 한자리에서 열 곡 넘게, 그것도 편하게 듣고 싶다면 이런 공연도 좋지 않을까. 나는 다음에도 이런 편성이 보이면 또 갈 것 같다.
글 닫기 전에..
경기필하모닉 '축제의 서곡'은 어떤 공연이었나?
경기 공연예술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특별공연이었다. 카르멘 서곡, 타자기 협주곡, 도나우강, 위풍당당 행진곡처럼 대중적으로 유명한 곡들을 짧게 이어 붙인 축제형 편성이라, 클래식 입문용으로 부담이 없었지 않았나 싶다. (이번 회차는 2026년 7월 11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지휘 홍석원)
클래식 잘 몰라도 즐길 수 있나?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 맞는 공연이 아니었을까. 아는 멜로디가 계속 나오니까 지루할 틈이 별로 없었다. 이런 편성은 곡 하나하나가 짧은 것도 초심자에겐 장점이 될 수 있다.
타자기 협주곡이 뭐지?
르로이 앤더슨의 'The Typewriter'라는 곡으로, 실제 타자기를 타악기처럼 쓴다. 타자 치는 소리와 벨소리, 종이 되돌리는 소리가 오케스트라와 맞물려 리듬을 만든다. 연주자의 연기까지 보는 재미가 있다.
아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을까?
이런 공연은 가격도 저렴하고 곡도 친숙해서 아이 동반 관객이 많은 것 같다. 다만, 관람 매너는 데려온 어른이 미리 챙겨주는 게 좋겠다. 아이에게 문화 경험을 시켜주는게 목적이라면, 매너 또한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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